[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광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품은 도시다. 금남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날의 함성과 숨결이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광주는 멈춰 있지 않다. 아픔을 덮지 않고 품어 안은 채, 예술과 문화로 치유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광주는 ‘기억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다.
베를린 역시 비슷한 궤적을 걷는다. 장벽으로 갈라진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그 상처를 도시의 일부로 남겼다. 낡은 벽은 캔버스가 되었고, 잿빛 시멘트는 색으로 다시 칠해졌다. 분단의 흔적 위에서 베를린은 새로운 정체성을 쌓았다. 이 두 도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닮아 있다.
광주의 문화적 심장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이 공간은 단순한 예술 시설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역사 위에 세워진, 문화적 회복의 상징이다. 대형 미디어 파사드와 국제 전시, 공연 프로그램은 광주를 아시아 예술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다. 시민들은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예술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 주변으로는 도시의 감각이 이어진다. 동명동과 양림동 일대는 카페와 서점, 공방이 공존하는 감성 거리로 변했다. 붉은 벽돌 건물 안에서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여행자는 작은 골목길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난다. 5·18의 기억은 차분하게 흘러가지만, 그 위에 쌓이는 일상의 온기는 분명 새롭다. 예술이 상처를 다루는 법을 광주는 알고 있다.
베를린의 장벽은 더 이상 분단의 상징이 아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는 100여 명의 예술가가 남긴 벽화가 이어진다. 평화, 통일, 자유의 메시지가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살아 있다. 미테 지역의 갤러리들은 실험적인 예술을 통해 도시의 과거를 해석하고, 크로이츠베르크 거리에서는 거리음악과 벽화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이곳의 예술은 박물관에 갇히지 않는다. 도시 전체가 열린 미술관이다.
베를린의 예술은 철저히 현실적이다. 분단, 이주, 젠더, 환경 등 시대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무겁지 않다. 자유로운 형식과 색채 속에 현실의 목소리가 살아 있다. 광주의 예술이 ‘기억의 위로’라면, 베를린의 예술은 ‘현재의 대화’다. 서로 다른 언어지만, 그 속에는 공통된 진심이 있다.

두 도시를 여행하면 묘한 공통점이 느껴진다. 광주의 골목마다 걸린 포스터, 베를린의 거리마다 붙은 낙서, 그 작은 흔적들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치와 예술, 일상과 기록이 뒤섞여 도시의 리듬을 만든다. 그 리듬이야말로 살아 있는 예술의 증거다.
광주의 저녁은 느리게 내려앉는다. 양림동의 언덕에서 바라본 노을은 오래된 시간의 결을 품고 있다. 반면 베를린의 밤은 음악으로 채워진다. 전자음과 재즈, 거리공연이 어우러져 자유의 도시를 완성한다. 두 도시의 에너지는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다. ‘자유’와 ‘기억’이다.
예술은 도시의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드러내고, 공유하고,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광주와 베를린이 그렇다. 시간의 깊이를 예술로 이겨낸 도시, 그곳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한 사회의 회복력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