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9 (수)

  • 흐림동두천 15.1℃
  • 흐림강릉 15.7℃
  • 흐림서울 16.5℃
  • 흐림대전 19.4℃
  • 흐림대구 19.1℃
  • 흐림울산 19.5℃
  • 흐림광주 22.1℃
  • 흐림부산 21.7℃
  • 구름많음고창 23.2℃
  • 맑음제주 26.3℃
  • 흐림강화 15.4℃
  • 흐림보은 18.0℃
  • 구름많음금산 19.7℃
  • 흐림강진군 23.0℃
  • 흐림경주시 18.6℃
  • 흐림거제 21.8℃
기상청 제공

[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⑤ 인도 바나나잎 밥상…자연이 만든 접시, 향으로 먹는 밥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식탁 위에 접시가 없다. 대신 넓고 윤기 나는 초록빛 잎 한 장이 자리를 대신한다. 뜨거운 밥이 올려지고, 카레와 렌틸콩 수프, 코코넛 반찬, 그리고 달콤한 디저트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인도의 바나나잎 밥상은 ‘자연이 만든 그릇’이자, 인간이 만든 철학적 식사다.

 

잎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밥에 스며들고, 손끝으로 섞으며 먹는 과정이 오감의 축제가 된다. 플라스틱이나 그릇 대신 잎을 쓰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도인의 지혜다. 여행자는 그 잎 위에서 인도의 시간과 향을 함께 맛본다.

 

인도 남부에 가면, 식당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직원이 접시 대신 커다란 초록 잎을 탁자 위에 조심스레 펴 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밥과 반찬, 소스, 절임, 튀김이 순식간에 차려진다. 이것이 바로 사파드(Sadya) 혹은 밀스(Meals)로 불리는 인도의 바나나잎 밥상이다.

 

 

지역과 종교에 따라 반찬 구성은 달라지지만, 그 철학은 같다. 자연에서 얻은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바나나잎은 인도에서 단순한 식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잎의 매끄러운 표면은 뜨거운 음식의 열을 적절히 흡수하고, 잎사귀에서 나는 미묘한 단 향은 밥과 카레의 풍미를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사용 후 바로 버려도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가장 친환경적인 접시로 꼽힌다. 오래전부터 인도인들은 잎 한 장을 식탁으로 삼으며 ‘먹는다는 것은 자연과 교감하는 행위’임을 잊지 않았다.

 

식사 예절 또한 독특하다. 인도 남부에서는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전통이다. 왼손은 부정하다고 여겨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손으로 밥을 비비며 먹으면 온도와 질감, 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손끝이 바로 ‘맛의 센서’가 되는 셈이다. 여행자들이 이 식사법을 배우면 대부분 놀란다. “손으로 먹는 게 이렇게 따뜻한 일인 줄 몰랐어요.” 바나나잎 밥상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경험형 미식이다.

 

이 밥상은 축제나 명절에도 빠지지 않는다. 케랄라 주의 추석인 ‘오남(Onam)’ 축제 때는 온 가족이 한 줄로 앉아 바나나잎 위의 사파드를 함께 먹는다. 잎 위에 올려지는 반찬의 개수는 20가지를 넘기도 한다. 매콤한 카레, 달콤한 바나나 튀김, 시큼한 요구르트, 아삭한 절임이 한데 어우러진다.

 

 

모두 한 잎 위에 올려져, 손끝으로 섞이며 하나의 조화로운 맛의 회화를 완성한다. 또한 바나나잎 밥상은 계급과 신분을 초월한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길가의 허름한 식당에서도, 사원의 무료 급식소에서도, 잎 한 장이면 식탁이 된다. 이 잎 위에선 부자도, 순례자도, 여행자도 모두 똑같은 자세로 앉는다. 음식이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바나나잎 밥상은 자연을 담는 그릇이자, 인간의 겸손을 담는 식사다. 뜨거운 밥을 올려놓으면 잎의 결이 살아 움직이고, 향이 밥에 스며든다. 그 향은 단순히 맛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잇는 다리다. 도시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시대에, 인도의 한 식탁은 여전히 손과 잎의 언어로 밥을 말한다.

 

여행자가 그 잎 위에 앉는 순간, 그는 단지 한 끼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품에서 밥을 배우는 것이다. 바나나잎 한 장 위의 식사는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무엇으로 자연을 기억했나요?”

포토·영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