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공항 안내 로봇이 여행객의 표정을 읽고, 숙소 예약 시스템이 개인의 취향을 예측한다. 관광산업은 지금 거대한 변곡점 위에 있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서비스 보조 수단을 넘어, 여행의 기획·소비·경험 방식을 다시 쓰고 있다. 전 세계가 ‘AI 관광’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내세우는 가운데, 한국 역시 산업 재편의 방향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기술의 확산 뒤에는 인력·데이터·정책의 불균형이라는 오래된 과제가 놓여 있다.
AI가 관광산업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팬데믹 이후다. 디지털 전환이 불가피해진 시점에서, 여행 수요 예측과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됐다. 글로벌 OTA(온라인 여행사)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고객의 이전 여행 기록을 분석하고, 개인 맞춤형 일정과 숙소를 자동 제안한다. 오사카 관광청은 다국어 AI 챗봇으로 여행자 상담을 자동화했으며, 빈 관광청은 관광객의 SNS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트렌드를 파악한다. AI는 더 이상 ‘보조 기술’이 아니라 관광의 핵심 언어가 됐다.
한국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한국 2035’ 전략을 통해 관광·공연·콘텐츠 산업 전반의 AI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관광공사는 ‘AI 관광 데이터 허브’ 구축과 ‘관광기업 혁신바우처’ 사업을 통해 중소 관광기업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지원 중이다. 챗봇 상담, 자동 번역, 여행 추천, 리뷰 분석 등 실무 중심의 AI 솔루션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산업 구조의 전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가장 큰 이유는 인력과 데이터다. 현장 종사자 다수가 AI의 개념은 이해하지만, 실무 적용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대학의 관광 관련 학과 역시 기술 융합 교육이 부족하고, 현장과 학계 간의 연결 고리도 약하다. 인공지능을 도입할 기술은 준비돼 있지만, 그것을 산업의 언어로 번역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데이터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AI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대규모의 관광 데이터는 대부분 민간 플랫폼에 집중돼 있으며, 공공 데이터는 표준화가 미흡하다. 관광지·숙박·교통·소비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연계할 시스템이 부재해, AI의 예측 정확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공공·민간이 협력하는 관광 데이터 허브 구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활용과 데이터 품질관리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AI는 이제 관광산업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상품 기획에서 고객 관리, 수요 예측까지 모든 단계가 데이터 기반으로 바뀌고, 소비자 역시 AI의 제안을 통해 여행을 설계한다. 그러나 진정한 전환은 기술이 아닌 생태계에서 시작된다. 인력, 데이터, 제도가 균형을 이뤄야만 AI는 관광의 효율을 넘어, ‘경험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AI는 여행의 편의를 넘어서, 관광의 철학을 바꾸고 있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려는 기술은 결국 ‘경험의 언어’를 확장시키는 과정이다. 관광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기술의 조화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AI로 재편되는 관광산업의 미래는 결국, 기술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