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AI는 여행자의 이동을 예측하고, 관광지의 혼잡도를 분석하며, 개인 맞춤형 일정을 제안한다. 기술은 편리함을 약속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우리의 동선과 취향, 감정까지 담고 있다. 관광산업이 인공지능으로 재편되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다. 관광객이 데이터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이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AI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AI 관광의 핵심은 데이터다. 여행자의 위치 정보, 숙박 기록, 소비 패턴이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분석되어야만 개인 맞춤형 관광이 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이 데이터가 프라이버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관광산업 분야 인공지능 도입 지원 방향 연구’에 따르면, 관광기업들이 AI 활용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간의 경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위치 기반 데이터나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에서는 법적 기준이 불명확해, 기업들이 적극적인 기술 도입을 주저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일부 해외 도시에서는 관광객의 이동 동선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혼잡 지역을 회피하거나, 맞춤형 추천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싱가포르는 관광객 위치 데이터를 분석해 교통량을 조절하고, 일본 오사카는 축제 기간 방문객의 밀집도를 예측해 안전 관리에 활용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 정보로 분류된 위치 데이터의 상업적 활용이 제한돼 있다. 관광객의 편의를 높이는 서비스일수록, 그만큼 개인정보 노출 위험도 커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실증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관광 AI 서비스가 혁신성을 인정받으면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유예하거나 완화해 실험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 관광공사는 관광 데이터 실증 사업을 통해 익명화된 동선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지역 축제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실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데이터의 비식별화, 동의 절차의 명확성, 정보 보관·삭제 규정 등 구체적인 실행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규제 샌드박스는 ‘한시적 허가’에 머물 뿐이다.
신뢰는 기술보다 복잡하다. 관광객은 AI의 작동 원리를 알지 못한 채 서비스를 이용한다. 따라서 시스템의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행객이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명시적 동의’는 단순한 체크박스가 아니라, 신뢰의 계약이다. 또한 AI가 제시하는 정보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한 윤리 기준 역시 필요하다. 특정 집단의 행동 패턴이 과도하게 학습돼 차별적 결과를 낳거나, 상업적 목적이 추천 시스템에 개입될 경우 신뢰는 쉽게 무너진다.
관광산업의 AI 전환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신뢰 경쟁이 돼야 한다. 데이터 활용이 윤리적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용자는 서비스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이는 산업 성장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관광객이 안심할 수 있는 데이터 관리 구조다.
AI는 관광의 편의성을 극대화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사생활에 가장 깊이 침투하는 기술이다. 관광객의 동선, 감정, 소비가 실시간으로 분석되는 시대일수록, 신뢰를 지탱하는 제도적 안전망이 절실하다. 관광산업의 미래는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얼마나 투명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AI 관광의 경쟁력은 ‘혁신’이 아니라 ‘신뢰’에서 비롯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