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강화도의 바람은 유난히 느리다. 그 바람이 스쳐가는 오래된 교정 위엔, 시간의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다. 벽에는 낡은 교훈 문구가 희미하게 남아 있고, 운동장은 잡초로 뒤덮였다. 철제 미끄럼틀은 녹슬어 내려앉았고, 창문 너머로는 오래전 떠난 아이들의 흔적만 남았다. 이곳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인천 강화군에는 현재 20곳이 넘는 폐교가 있다. 인구 감소와 도시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1990년대 이후로 교문이 굳게 닫힌 학교가 늘었다. 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강화 지역 초등학생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학교는 사라졌고, 마을의 중심이던 공간은 이제 기억 속 풍경으로 남았다.
삼산면의 석모초등학교 삼산분교장은 2012년 마지막 학생이 졸업한 뒤 문을 닫았다. 그 후 10여 년, 교실 안엔 여전히 낡은 칠판과 의자가 남아 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해무가 분필 자국 위를 흘러내린다. 이곳은 잠시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됐지만, 방문객이 줄며 다시 폐쇄됐다. 이제 마을 주민들만 가끔 운동장을 지나칠 뿐이다.
교동도의 교동초등학교 대룡분교장은 폐교 이후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쓰였다. 교실 벽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낙서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인근에는 ‘교동도 평화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어, 분단의 상처와 함께 지역의 기억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분교의 건물은 점점 허물어져, 벽돌 틈새로 바람과 풀씨가 드나든다.
강화도의 폐교는 단순한 ‘버려진 건물’이 아니다. 마을이 붕괴하고 공동체가 약화된 시대의 징후다. 한때 아침마다 울리던 종소리는 멈췄고, 운동장에서 들리던 함성은 사라졌다. 일부 학교는 창고나 주민센터로 바뀌었지만, 그 기능은 생명력보다 행정의 흔적에 가깝다.
현행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은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이 폐교를 임대하거나 매각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실제로 강화군에서도 여러 폐교가 민간에 임대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활용은 일시적이었다. 인구 유입이 없는 지역에서 사업적 지속성을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억의 장소는, 결국 사람의 발길이 닿을 때에만 존재한다. 교실에 남은 책걸상, 벽에 적힌 ‘정직하자’라는 문장, 금이 간 운동장의 시멘트 바닥은 그 시절의 시간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도시가 새로운 건물을 세워나가는 동안, 강화도의 이 폐교들은 조용히 한국 근현대 교육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면, 운동장의 깃대가 부서진 금속음을 낸다. 그 소리가 마치 옛날의 종소리처럼 들린다. 아이들이 사라진 뒤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 교정 어딘가에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