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태백시 창죽동 깊은 숲 속, 해발 1420미터의 고지대에 물이 솟는다.이 물줄기는 굴착된 인공 통로가 아닌, 수천 년간 산이 품어온 맥락에서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이곳을 검룡소라 부른다. 맑은 물은 작은 연못을 이룬 뒤 계곡을 타고 흘러, 훗날 한강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이 청정한 풍경은 오래전부터 ‘죽음의 땅’ 위에 서 있다. 태백은 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중심이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함태·통동·장성·철암 등지에서 검은 금, 석탄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광부 수는 수만 명. 지하 500미터로 내려간 그들의 땀과 피가 서울의 전등을 밝혔다.
하지만 1989년, 정부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내놓으며 모든 것이 뒤집혔다. 비용 절감, 효율 개선, 그리고 ‘청정에너지’ 전환이라는 명목 아래 태백의 광산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갱도는 물에 잠기고, 인부 숙소와 적재장은 버려졌다. 검은 먼지가 사라진 자리엔 침묵이 남았다.
산이 사람을 밀어내자, 물이 돌아왔다
폐광의 상처는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복수를 시작했다. 채굴이 멈추자, 수로를 따라갔던 지하수가 다시 원래의 길을 찾았다. 그 첫 신호가 바로 검룡소였다. 지질학자들은 “광산 갱도가 막히면서 지하수가 압력을 받아 윗층 암반을 뚫고 올라온 것”이라 분석한다. 이곳에서 솟는 물의 양은 하루 약 2000톤. 겨울에도 얼지 않고, 연평균 수온은 9도. 한강의 ‘숨은 발원지’라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 맑은 물 아래엔 인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검룡소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함태탄광의 폐갱 입구가 있다. 붉게 녹슨 철문이 입구를 막고 있고, 그 너머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지질 구조상 검룡소로 이어지는 수맥 일부가 이 폐갱을 통과한다는 것이
지질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다. 즉, 검룡소의 맑은 물은 어쩌면 과거 광부들이 마셨던, 그 어둠의 갱도를 지나온 물일지도 모른다.
되살아난 숲, 그러나 완전한 복원은 없다
지금의 검룡소 숲길은 관광객을 위한 ‘생태 탐방로’로 정비돼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버려진 송전주, 무너진 탄차 레일, 낡은 광부 막사 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산림청은 2000년대 초부터 이 일대에 대규모 복원 사업을 벌였다. 석탄더미를 걷어내고, 흙을 덮고, 참나무와 자작나무를 심었다. 겉보기엔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토양을 조금만 파면 여전히 검은 석탄 찌꺼기가 손에 묻어난다.
태백시는 현재 폐광 지역의 일부를 ‘생태·문화 관광지’로 개발 중이다. 함태광업소 인근에는 석탄박물관이 세워졌고, 장성광업소 자리엔 ‘365세이프타운’ 같은 체험형 시설이 들어섰다. 그러나 검룡소 일대만큼은 손을 대지 않는다. 시 관계자는 “여긴 개발보다는 보존의 가치가 더 크다”며 “자연이 스스로 회복한 상징적인 장소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산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기억
취재 중 만난 한 노광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산을 파내려갔지만, 결국 산이 우리를 내보냈어. 이 물은 그때 못다 흘린 사람들의 땀일지도 모르지.”
그의 말대로 검룡소의 물은 단순한 자연의 순환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산업의 부침, 노동의 희생, 인간의 탐욕과 회한이 함께 흐른다. 한때 지하로 내려갔던 삶들이 이제는 물로, 숲으로 되살아났다. 산이 인간을 밀어내고 다시 품는, 기이한 순환의 끝에서 태백은 묻는다 - “이 땅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