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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여행지–한국편⑨] 사라진 해변 – 보령 무창포 옛 해수욕장

바다가 물러서자, 기억도 함께 밀려갔다

[뉴스트래블=편집국] 서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 한 세기 전, 이곳은 “한국 최초의 해수욕장”이라 불렸다. 당시엔 바다가 아직 사람의 영역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1928년, 일제 강점기 당시 관료들의 피서용 전용 해변이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무창포는 ‘근대적 피서 문화의 출발점’이 됐다.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조차 생소하던 시절, 이곳의 모래사장은 도시와 시골을 잇는 여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파도는 여전했지만, 마을의 리듬은 무너졌다.

 

 

사라진 모래, 잊힌 사람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무창포 해변은 인파로 들끓었다. 피서철엔 여관과 민박집이 줄지어 서고, 해변가 포장마차에서는 튀김과 수박이 넘쳐났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해변의 모래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연안개발과 매립, 해류 변화가 겹치면서 모래 대신 돌과 자갈이 밀려들었다.


보령시는 모래 유실 방지를 위해 인공 방파제와 사빈 복원사업을 시도했지만, 원래의 곱고 넓던 해변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대천해수욕장이 급성장하면서 무창포의 이름은 서서히 지워졌다. 한때 ‘서해의 진주’라 불렸던 이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마을 상권도 무너졌다.

 

모래사장은 해마다 10~20cm씩 줄어들었다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분석 결과도 있다. 해변 뒤편에는 방파제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늘어섰고, 갯벌은 점차 좁아졌다. 이로 인해 바닷새의 서식지와 해양 생물의 산란장이 줄어들며 한때 조개잡이 체험으로 북적이던 구역은 지금 거의 비어 있다.

 

‘신비의 바닷길’로 불리는 간조 시 노출 현상만이 이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무창포 해변에서 석대도까지 이어지는 1.5km 길의 모래길이 드러날 때면, 관광객들은 여전히 환호하지만 그 너머엔 다른 풍경이 있다. 바다의 퇴조선이 점점 얕아지며, 물길이 드러나는 시간도 해마다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바닷길의 주기는 자연의 호흡에 따라 달라지지만, 인위적 구조물의 영향이 누적되면 장기적으로 소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바다와 사람의 거리

무창포항 뒤편 마을엔 70년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낡은 어촌이 있다. 과거엔 여름 한철만 버텨도 한 해 생계가 해결됐지만, 지금은 관광객보다 낚싯배가 더 많다. 새로 생긴 도로와 고층 리조트가 바닷가 풍경을 바꾸었고, 마을의 젊은 세대는 이미 도시로 떠났다. 남은 것은 간헐적으로 문을 여는 카페 몇 곳과 썰물 때마다 드러나는 갯벌 위의 오래된 그물들뿐이다.

 

보령시청은 2023년부터 해안 침식 방지를 위한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인공 사구를 조성하고, 해양쓰레기 정화와 수질 개선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복원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다. 매년 열리는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 축제도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한 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금단의 해안선, 역사와 기억

무창포의 바다는 여전히 밀려오지만, 인간의 흔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과거의 피서객과 어촌의 활기는 사라졌지만, 갯벌과 노을, 바람과 파도는 여전히 이야기를 품고 있다. 보령시는 해안 복원과 생태관광 조성 등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히 사라진 해변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역사와 흔적을 보여주는 ‘금단의 여행지’로 남는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무창포의 풍경 속에서, 독자는 잊힌 여름과 사라지는 해안을 동시에 마주하며, 인간과 자연의 균형이 얼마나 섬세한지를 체감하게 된다. 무창포의 바다는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그 파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뒤로 물러나고 있다. 결국, ‘금단의 여행지’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잊은 시간을 발견하게 하는 장치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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