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관광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과거 여행이 며칠 혹은 몇 주 동안의 단기 체류라면, 이제는 몇 달 동안 한 도시에 머무르며 일과 생활, 여행을 동시에 영위하는 ‘장기 체류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관광객이라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 거주자에 가깝다. 관광 산업은 이들의 소비를 필요로 하고, 도시는 이들을 끌어들여 지역 경제를 유지하고자 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증가는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됐다.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보편화되며 일과 장소의 연계가 약해졌고,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에 따라 여행사는 항공권 판매보다 장기 숙박과 지역 경험을 묶은 상품을 확대했고, 도시는 노마드를 위한 비자 제도와 커뮤니티 인프라 개선에 나섰다. 관광을 넘어 도시 경쟁의 새로운 축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소비 방식과 이동 패턴이 기존 관광객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명소 중심의 짧은 소비보다 일상형 소비가 크다. 카페에서 하루 종일 업무를 보고, 가까운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매하며, 주거지 주변 소규모 문화 공간을 찾는다. 여행객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의 하나로 스며드는 소비 구조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 상권의 재편과 서비스 다양화로 이어지고 있다.
정책 경쟁도 치열해졌다. 포르투갈과 에스토니아는 일찍부터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도입해 장기 체류 외국인을 끌어들였고, 스페인과 그리스, 크로아티아는 뒤늦게 비자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발렌시아, 리스본, 두브로브니크 등은 장기 체류자를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와 주거형 호텔을 확충하며 ‘살기 좋은 도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다. 방콕과 발리는 이미 노마드 허브로 변모했고, 말레이시아와 대만도 같은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지역사회 내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장기 체류 외국인의 유입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발하며 원주민의 주거 부담을 늘릴 수 있다. 발리는 관광객과 장기 체류 외국인 중심의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지역 문화와 생활 환경이 훼손됐다. 포르투갈에서는 외국인의 원격 근무 비자를 두고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가 경제 회복에 기여하는 동시에, 도시의 취약한 기반과 불평등을 드러내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장기 체류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디지털 노마드는 경기 불황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소비를 한다. 여행 시즌을 벗어난 시기에도 도시 경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부 도시는 노마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지역 창업과 교육 프로그램까지 연계하며, 관광에서 정주로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관광의 정의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방문과 체류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도시 간 경쟁은 단순한 ‘볼거리’보다 ‘살 만한 환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앞으로 여행 산업은 이동을 다루지만, 그 이동은 점차 느려지고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세계 관광 패턴뿐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까지 바꾸고 있다.
관광의 미래는 더 이상 일시적 방문에 머물지 않는다. 여행자는 도시의 손님이자, 때로는 잠정적 주민이 된다. 장기 체류의 시대,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여행자는 어디까지 도시의 일부가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미래 관광 메커니즘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