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김응대 칼럼니스트] 러닝이 끝나는 지점에서 여행이 시작되는 시대다. 태국에서 러닝은 더 이상 기록을 재는 개인 운동이 아니다. 달리는 행위는 이제 도시를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소비하는 하나의 여행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에 ‘런트립’이라는 단어가 있다.
태국 러닝 시장은 이미 대중화 단계를 넘어섰다. 러닝 인구는 1,400만 명을 넘었고, 해마다 1,500건 이상의 러닝 이벤트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성격이다. 러닝 참가자들은 더 이상 “얼마나 빨리 달렸는가”보다 “어디를 달렸는가, 무엇을 경험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경관이 있는 코스, 사진이 남는 장소, 굿즈와 운영의 완성도, 그리고 함께 달리는 커뮤니티가 러닝의 가치를 결정한다.
이 지점에서 러닝은 여행 산업과 만난다. 방콕의 도심 마라톤, 푸켓의 해변 러닝, 치앙마이의 자연과 트레일 코스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체류형 관광 상품으로 기능한다. 러닝 대회 하나가 숙박과 교통, 식음, 지역 관광 소비를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달리기 전날 도착하고, 달린 뒤 하루 이틀 더 머무는 패턴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해외 원정 러닝, 이른바 런트립이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국 러너들이 일본과 대만, 중국으로 향하는 것은 단지 대회의 규모 때문이 아니다. 그 도시는 ‘달릴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안정적인 운영, 관광과 결합된 코스, 참가권과 숙박이 묶인 패키지, 그리고 SNS로 공유할 수 있는 경험 설계까지, 러닝은 완결된 여행 상품이 된다.
이 흐름은 기존 관광의 문법을 바꾼다. 목적지가 먼저 있고 활동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활동이 목적지를 선택하게 만든다. 쇼핑이나 휴식 중심의 여행보다, ‘내가 무엇을 하러 가는가’가 분명한 여행이 늘어난다. 러닝은 그 출발점이 됐다.
이런 변화는 한국 관광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봄과 가을의 기후, 도시와 자연을 아우르는 코스, 국제 대회 운영 경험은 분명한 경쟁력이다. 하지만 러닝을 여전히 행사나 대회로만 바라본다면, 런트립 시장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달리기 자체가 아니라, 달리기를 둘러싼 경험의 설계다.
운동은 끝났는데 여행은 시작된다. 태국 러너들이 보여주는 이 장면은, 스포츠와 관광의 경계가 이미 무너졌음을 말해준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여전히 관광을 ‘보는 것’으로만 정의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는 여행’으로 다시 쓰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