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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2] 한 나라, 한 장면⑧ 스리랑카 독립기념관

식민의 끝에서 시작된 국가의 자립 선언
분열과 화해가 교차한 섬나라의 광장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인도양 한가운데 자리한 섬나라 스리랑카는 해안보다 내륙의 한 광장에서 국가의 얼굴을 드러낸다. 콜롬보 중심부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은 거대한 기둥과 지붕만으로 구성된 단정한 건축물이다. 화려한 장식이나 과장된 기념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비어 있는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1948년 영국 식민 통치가 끝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독립은 곧바로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민족 갈등과 내전이 이어지며 국가는 오랜 시간 흔들렸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은 시작이자 숙제를 동시에 품은 장소가 됐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독립기념관은 스리랑카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국가로 선언한 자리다.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는 의식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통치 권력이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한 순간이었다. 국가는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

 

건물은 전통 왕궁 양식을 참고해 설계됐다. 식민 건축 대신 토착 형식을 선택했다. 과거 왕국의 기억을 현대 국가와 연결했다. 문화적 자립을 강조한 결정이었다.

 

광장은 사방으로 열려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권력의 중심이지만 위압감이 없다. 국가는 시민과 같은 눈높이에 서 있다.

 

그래서 이 장소는 단순한 기념 시설이 아니다. 국가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정리한 선언문에 가깝다. 스리랑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표성은 자연스럽게 고정됐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스리랑카는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겪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 통치가 이어졌다. 행정과 경제 구조는 외부 권력에 종속됐다. 독립은 오랜 과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 흐름이 본격화됐다. 현지 엘리트와 시민 사회가 자치를 요구했다. 영국은 점진적 이양을 선택했다. 정치적 전환이 시작됐다.

 

독립 이후 정부는 상징 공간 조성에 나섰다. 새로운 국가의 기억을 담을 장소가 필요했다. 수도 중심에 부지를 확보했다. 독립기념관 건설이 추진됐다.

 

건축은 의도적으로 절제됐다. 거대한 동상이나 군사적 상징을 배제했다. 대신 비어 있는 광장을 강조했다. 국가는 권위보다 공동체를 택했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독립 이후 스리랑카는 곧 내부 갈등에 직면했다. 싱할라계와 타밀계의 대립이 심화됐다. 차별 정책이 사회를 분열시켰다. 긴 내전이 시작됐다.

 

이 기간에도 독립기념관은 국가 행사의 무대였다. 기념식과 추모식이 반복됐다. 승리와 상실이 동시에 언급됐다. 공간은 복잡한 감정을 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화해의 상징으로 해석이 바뀌었다.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와 평화 선언이 이어졌다. 국가는 과거를 정리하려 했다. 의미가 확장됐다.

 

그 결과 독립기념관은 단순한 독립 기념물이 아니게 됐다. 분열과 통합의 역사를 함께 담았다. 스리랑카 현대사가 겹겹이 쌓였다. 복합적 국가 기억의 장소가 됐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날 이곳은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가족과 학생, 관광객이 잔디 위를 걷는다. 일상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정치적 긴장이 낮아졌다.

 

동시에 국가 의식도 계속 열린다. 독립기념일 행사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군악대와 국기가 등장한다. 국가는 이 공간에서 스스로를 확인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된다. 내전과 식민의 기억을 배우는 장소다. 과거가 현재와 연결된다. 공간이 교과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를 보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의미가 계속 추가된다. 국가는 이곳에서 자신을 다시 정의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독립기념관은 스리랑카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독립의 기쁨과 갈등의 상처가 한 자리에 공존한다. 국가는 단선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굴곡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스리랑카가 보인다. 작은 섬이지만 역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화해를 향한 노력이 지금도 이어진다. 독립기념관은 그 얼굴이 가장 또렷하게 남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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