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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2] 한 나라, 한 장면⑨ 체코 바츨라프 광장

체제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모인 거리
혁명이 일상이 된 중부유럽의 무대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국립박물관까지 길게 이어진 바츨라프 광장은 처음 보면 넓은 대로에 가깝다. 전통적인 광장이라기보다 상점과 호텔, 트램이 오가는 도시의 중심 거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체코 현대사는 거의 모두 이곳을 통과했다. 이 나라는 중요한 순간마다 거리로 나왔다.

 

제국의 붕괴, 나치 점령, 공산 정권, 그리고 민주화 혁명까지 장면이 반복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민은 같은 장소에 모였다. 건물은 그대로였지만 체제는 계속 교체됐다. 그래서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라는 국가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 됐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 신시가지의 중심축이다. 상업과 교통, 행정 기능이 한곳에 집중돼 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인다. 도시의 심장이자 국가의 집결지다.

 

광장 끝에는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서 있다. 체코 민족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역사적 정체성이 이 지점에 고정됐다. 시민은 이 동상 앞에서 목소리를 낸다.

 

중요한 정치 집회 대부분이 이곳에서 열렸다. 대통령 연설과 대규모 시위가 반복됐다. 국가는 군중의 반응을 직접 마주한다. 권력과 시민의 거리가 가깝다.

 

그래서 바츨라프 광장은 단순한 번화가가 아니다. 체코 정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무대다. 사건이 쌓이며 상징이 강화됐다. 대표성은 역사 속에서 굳어졌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이 공간은 중세 말 시장 거리로 출발했다. 말과 곡물을 거래하던 상업 중심지였다. 도시 경제의 축이었다. 생활 공간이 먼저 형성됐다.

19세기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며 의미가 달라졌다. 체코어와 문화 부흥이 이곳에서 전개됐다. 집회와 행사들이 이어졌다. 공간이 정치성을 띠기 시작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하면서 광장은 국가 행사 장소가 됐다. 신생 국가의 축하식과 기념식이 열렸다. 광장은 새로운 정체성을 품었다. 생활 공간이 상징 공간으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바츨라프 광장은 제도 밖 정치의 장이 됐다. 누구나 모일 수 있었다. 발언이 가능한 열린 구조였다. 체코식 공공성이 자리 잡았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1939년 나치 독일이 점령하자 광장은 통제의 대상이 됐다. 군중 집회는 금지됐다. 저항은 억눌렸다. 공간의 기능이 축소됐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소련군 진주가 이어졌다. 개혁 요구는 탱크에 막혔다. 광장은 다시 긴장에 휩싸였다. 시민은 좌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1989년 상황이 바뀌었다. 수십만 명이 이곳에 모여 공산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이른바 ‘벨벳 혁명’이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체제가 무너졌다.

 

그 결과 바츨라프 광장은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폭력이 아닌 집회로 변화를 이끌었다. 체코는 이 장면을 국가 기억으로 삼았다. 광장이 곧 혁명이 됐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날 바츨라프 광장은 관광객과 시민이 뒤섞인 거리다. 상점과 카페, 호텔이 줄지어 있다. 일상이 먼저 보인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으로 향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린다. 시민 참여가 반복된다. 광장은 계속 살아 있다.

 

이곳은 과거를 전시하는 유적이 아니다. 현재의 목소리가 울리는 현장이다. 체코 민주주의의 체온이 유지된다. 공간이 제도를 보완한다.

 

그래서 바츨라프 광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완성된 상징으로 굳지 않았다. 계속 사용되며 의미가 갱신된다. 국가는 이 장소를 통해 자신을 점검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기질을 보여준다. 급진적 폭력보다 집단적 연대를 선택했다. 거리에서 토론하고 요구했다. 시민이 변화를 만들었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체코가 보인다. 강대국 사이에서 흔들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체제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광장은 남았다. 바츨라프 광장은 그 얼굴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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