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사막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와 바위, 시야를 가로막을 것이 없는 풍경. 그러나 때로 권력은 드러남이 아니라 은폐 속에서 자란다. 사막의 붉은 협곡 끝에 모습을 드러내는 페트라는 그런 도시다. 이곳은 세워진 도시라기보다, 감춰진 도시였다.
페트라는 기원전 4세기 무렵 아라비아 북부에서 활동하던 나바테아인의 수도였다. 나바테아인은 유목 전통을 지녔지만,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향료와 비단, 금속을 실은 대상(隊商)을 안전하게 연결하는 중개자였다. 실크로드와 홍해, 지중해를 잇는 교역의 결절점에서 그들은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부는 사막 한가운데 바위를 깎아 만든 도시로 응결됐다.
페트라의 상징인 알 카즈네, 이른바 ‘보물창고’는 건물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바위를 파내 조각한 구조다. 이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었다. 바위를 깎아 만든 건축은 외부의 침입에 강했고, 동시에 도시의 존재를 쉽게 노출하지 않았다. 좁은 협곡 시크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도심이 열린다. 페트라는 지형 자체를 방어 장치로 활용했다. 장성이 외부를 밀어냈다면, 페트라는 시선을 차단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물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적은 사막에서 나바테아인은 정교한 수로와 저수 시스템을 구축했다. 홍수 때 흘러내리는 물을 저장하고, 평소에는 지하 수로로 도시를 공급했다. 사막이라는 약점을 역으로 통제의 수단으로 바꾼 셈이다. 물을 관리하는 자가 도시를 지배했다.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눈에 보이는 권력을 떠받쳤다.
그러나 은폐 전략은 영원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병합하면서 교역의 중심은 이동했고, 페트라는 점차 쇠퇴했다. 363년 대지진은 도시의 기반 시설을 무너뜨렸다. 대상로가 바뀌고, 권력의 축이 이동하자 도시는 빠르게 잊혔다. 사막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페트라는 그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서구 세계에 페트라가 다시 알려진 것은 19세기 초였다.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현지인으로 위장해 이곳을 방문하며 기록을 남겼다. 이후 고고학 발굴과 관광 산업이 결합하면서, 페트라는 ‘잃어버린 도시’라는 서사를 입었다. 감춰졌던 공간은 이제 노출을 통해 생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폐의 전략으로 번영했던 도시는 공개의 전략으로 부활했다.
2007년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린 것도 상징적이다. 협곡 끝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미지로서 강력하다. SNS와 영상 매체는 그 극적인 등장 장면을 반복 재생산한다. 한때는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던 도시가, 이제는 시선을 끌어모으는 브랜드가 됐다. 은폐는 마케팅 자산이 됐다.
페트라는 질문을 던진다. 권력은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가. 아니면 감춰질 때 더 강해지는가. 나바테아인은 사막이라는 조건을 약점이 아닌 전략으로 바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와 물 관리 체계가 도시를 지탱했다. 장엄한 파사드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기술과 계산이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전략은 반복된다. 데이터 센터는 창문 없는 건물 안에 숨고, 금융 자본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이동한다. 현대의 권력 역시 반드시 높은 탑 위에 서 있지 않다. 때로는 감춰진 구조 속에서 더 강하게 작동한다. 페트라는 고대의 유적이면서, 보이지 않는 힘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교과서다.
사막의 붉은 바위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교역의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제국의 발걸음이 겹쳐 있다. 왜 사막은 도시를 숨겼는가. 어쩌면 사막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숨고자 했던 것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한 도시를 불가사의로 만들었다.
다음 편에서는 군중이 권력의 도구가 된 공간으로 향한다. 원형 경기장 안에서 제국은 어떻게 오락을 통치의 기술로 바꿨는지, 콜로세움을 통해 들여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