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단순한 보존을 넘어 '평화와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역사 관광지로의 대전환이 예고됐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발표한 '전적지 활용 중장기 로드맵' 보고서는 6.25 전쟁과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전국 곳곳의 전적지를 미래 핵심 관광 자원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유물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자 글로벌 평화 관광의 거점으로 전적지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역사'를 '이야기'로 엮는 통합 브랜드 구축'전적지 활용 중장기 로드맵'이 제시하는 핵심은 산발적으로 관리되던 전적지들을 하나의 통합된 브랜드와 스토리텔링으로 엮는 것이다. 전적지 유형별로 테마를 분류하고, 각 장소가 가진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입체적으로 연결해 방문객들이 연속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예를 들어, 특정 전투의 경로를 따라 걷는 '평화 순례길'을 개발하거나, DMZ 인접 지역을 '화해와 상생'의 주제로 묶는 방식이다. 이러한 통합 브랜드 구축은 '한국형 다크 투어리즘'의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한다. 보고서는 단순히 전쟁의 비극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그 비극을 극복하고 평화를 향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히말라야 산맥을 넘나드는 부탄의 시장에서는 ‘돌보다 단단한 음식’이라는 별명을 가진 간식이 있다. 바로 도쥐, 혹은 츄르피(Chhurpi). 처음 보면 고대 유적에서 굴러온 화강암 조각 같고, 손에 들면 묘하게 가벼우면서도 견고하다. 여행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치과 보험이 있는 사람만 씹을 수 있는 간식”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돌 같은 치즈는 히말라야의 자연과 고산민의 생활을 품은 귀중한 저장식이자 이동식 식량이다. 부탄의 목축 문화, 불교식 절제, 그리고 척박한 고산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생존 맛. 이 작은 돌덩이가 어떻게 한 나라의 전통 간식으로 자리 잡았는지, 그 탄생 배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히말라야의 깊은 골짜기와 봉우리가 나라 전체를 감싸고 있어 외부와의 왕래가 적었고, 자연히 오래 버틸 수 있는 저장식이 필수였다. 도쥐는 이 환경에서 태어난 산물이다. 야크나 소의 우유를 발효·응고시키고, 천에 싸서 수분을 쥐어짜낸 뒤, 마지막으로 강풍에 건조하거나 햇볕 아래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말려 단단함의 끝을 끌어올린다. 그 과정이 ‘돌 같다’는 별명을 만든 것이다.
[뉴스트래블=편집국] 아침의 햇빛이 닿지 않는 해안이 있다. 바다와 사막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차가운 안개가 하늘을 가리고, 모래 위에는 오래전 바다가 삼켰다 밀어낸 난파선의 잔해가 뼈처럼 눕는다. 스켈레톤 코스트. 지도 속에서는 단순한 지명이지만, 실제 그곳에 선 사람들은 이 해안이 왜 ‘인간이 마지막까지 피해야 하는 장소’로 불려왔는지 금세 이해하게 된다. 뼈와 모래의 경계에서스켈레톤 코스트는 나미비아 북서쪽, 대서양과 나미브 사막이 맞닿는 500km 길이의 해안선이다. 이름만 보면 누군가 과장해 붙인 별명 같지만, 이곳의 첫인상은 그보다 더욱 적막하다. 파도는 거칠지만 소리는 둔탁하고, 모래 언덕은 매번 모양을 바꾸며 바람에 갈린다. 해류와 사막의 기단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안개는 하루 종일 해안을 따라 흘러다닌다. 스켈레톤 코스트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 난파선이 하나둘 나타난다. 외판이 부식돼 바다색이 벗겨진 선체, 뒤집어진 철골, 침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이 고스란히 남은 조타실. 바다는 이 잔해들을 밀어 올리고, 사막은 그것을 모래 속에 가라앉힌다. 그 경계에서 풍경은 묘하게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난파선이 쌓여 만들어진 이름이 해안은 오래전부터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전 세계 관광은 지금 거대한 전환을 통과하고 있다. 기후 변화, 기술 혁신, 인구 이동, 디지털 소비, 지정학적 불안이 동시에 작동하며, 기존의 예측 모델이 더 이상 미래를 설명하지 못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각 도시와 국가는 관광을 단순한 산업이 아닌 국가 전략, 경제 조정 장치, 외교 영향력의 일부로 다루기 시작했고, 여행자 역시 감정·가치·리스크 판단을 복합적으로 반영해 이동한다. 관광은 그 자체로 세계의 거울이자 방향 지표가 됐다. 관광의 재편은 단순한 수요 증가나 회복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기후 변화는 여행 지도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여름철 폭염으로 남유럽의 체류 기간이 단축되고 북유럽 체류 수요는 빠르게 상승했다. 겨울에는 반대로 눈 부족으로 알프스 스키 시즌이 짧아지고, 대신 인공 설비 투자와 고지대 이동이 늘어나는 식의 지역별 대응 분화가 나타난다. 기후 요인은 이제 계절이 아닌 연중 변수로 자리 잡아 관광 산업 전반에서 장기 조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 기술의 변화는 관광 메커니즘의 두 번째 축이다. 항공권 가격과 최적 일정 추천을 자동화하는 알고리즘은 이미 대다수 여행자의 소비 행동을 좌우한다. 검색 트렌드와 SN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여행은 자유의 상징이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세계 정세의 영향을 받는다. 전쟁, 테러, 경제 제재, 감염병, 자연재해는 여행의 방향을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관광은 외부 충격에 가장 민감한 산업이며, 동시에 그 충격의 흔적을 가장 오래 남기는 분야이기도 하다. 지금 여행자의 선택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비용이나 편의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 드리워진 불안의 지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관광의 구조를 뒤흔들었다. 팬데믹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동유럽 여행 수요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급격히 줄어들었고, 발트 3국·폴란드·루마니아 등 국경 인접 지역은 안전 이미지에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역은 여행 수요가 오히려 증가했다. ‘안전한 유럽’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재정의된 셈이다. 중동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역사·종교·자연 자원이 풍부하지만, 분쟁과 긴장이 이어질 때마다 여행 흐름이 급변한다. 이스라엘·레바논·요르단을 잇는 성지 순례 루트는 지역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중단되거나 우회로가 만들어졌고, 걸프 지역은 국가 간 관계 변화에 따라 관광 캠페인과 입국 정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록키 산맥의 서부 풍경은 언제나 거칠고 대담하다. 그런데 이 땅의 음식 문화도 그 기질을 그대로 닮은 한입을 품고 있다. 이름만 보면 신선한 해산물 요리처럼 들리는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 그러나 막상 그 실체를 알게 되면 많은 여행자가 숟가락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다. 이 요리는 바다와는 전혀 상관없는 소의 고환이다. 서부 개척 시대의 생존 음식이자 카우보이 유머가 빚어낸 상징적인 요리. 이 이색 음식은 단순한 충격 요소가 아니라, 가난과 효율, 그리고 대륙의 초원을 누비던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늘은 그 ‘충격적이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한입 속으로 들어가 본다.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서부 개척민에게 가축은 생존의 모든 기반이었다. 소 한 마리는 고기, 젖, 가죽, 노동력까지 제공해 주는 종합 자원이었고, 따라서 버려지는 부위는 거의 없었다. 도축 과정에서 나온 내장은 물론 고환까지 모두 귀중한 단백질이자 열량 공급원으로 활용됐다. 당시의 카우보이들은 이 부위를 손질한 뒤 밀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튀겨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간식으로 삼았다. 이름을 ‘오이
[뉴스트래블=편집국] 안데스의 능선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길 하나. 좁고 가파른 돌길은 구름 속으로 흔적을 감추고, 발아래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협곡이 펼쳐진다. 페루 잉카 트레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라 불리지만, 그 아름다움은 언제나 위험과 맞닿아 있다. 돌이 부서진 흔적, 4,200m의 공기, 그리고 문명이 사라진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이동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잉카 문명의 잔향 사이를 통과하는 경험이다. 구름 위의 길이 시작되는 곳잉카 트레일의 전 구간은 약 43km. 수치만 보면 짧아 보이지만, 고도 2,800m에서 시작해 4,200m ‘데드우먼패스’에 이르기까지, 걷는 이들은 매 순간 고산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산소는 얇아지고, 구름은 발밑과 얼굴 사이를 오가며 길의 경계를 지운다. 돌로 이어진 계단은 500년 전 잉카인들이 깎아 만든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래된 돌길은 비에 미끄럽고, 일부 구간은 폭 1m도 되지 않는다. 길 아래로는 강물이 실선처럼 흐르고, 협곡은 먹먹한 어둠으로 가라앉는다. 여행자들은 이 길을 ‘성지’라 부르지만, 잉카인들에게 이 길은 제국의 동맥이자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세계 관광은 더 이상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각국이 정책과 외교, 경제 전략을 총동원해 관광을 키우거나 조정하는 시대가 됐다. 도시 간 경쟁이 이어지던 전통적 구도는 국가 단위의 전략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관광은 경제 성장의 동력이자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수단이며, 때로는 외교 갈등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관광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는 흐름은 이미 여러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의존을 벗어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인 비전2030의 핵심 축으로 관광을 정의하며, 홍해 연안을 개발해 초대형 리조트와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관광, 대형 행사 유치, 직항 노선 증설 등 관광을 미래 산업으로 전환하는 속도는 중동 전체의 변화를 이끄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비즈니스 관광을 넘어 대규모 이벤트와 의료·교육 관광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고소득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자연과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직항 노선과 디지털 비자 정책을 강화하며 관광객 유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국가별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세상에는 닭, 소, 돼지를 넘어선 야생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바로 공룡의 후예라 불리는 악어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노던준주에서는 악어가 특별한 존재다. 한때 멸종 위기까지 갔던 이들을 보호하며 수를 회복시키자, 오히려 악어가 사람을 위협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그 결과 나타난 현실적인 해법은? 바로 먹자였다. 가까운 진화론의 기억을 품은 육질, 닭과 물고기의 사이, 이 둘도 아닌 어딘가. 한입 베어 문 순간, 여행자는 문득 생각한다. ‘내가 지금, 공룡을 굽고 있다?’ 원시의 맛을 오늘의 테이블 위로 옮겨온 오스트레일리아. 야생과 식탁의 간극은 생각보다 얇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악어의 왕국이라 불린다. 특히 노던준주에서는 염수악어(Saltwater Crocodile)가 인구보다 많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총 길이 5m 이상의 초대형 포식자. 원주민 아버지의 꿈속에 나타나는 주술적 존재이자, 밤이면 강둑을 지배하는 무서운 이웃. 그러나 도시가 강을 침범한 건 인간이고, 결국 공존의 과정에서 악어산이라는 독특한 해법이 등장했다. 지금의 악어 스테이크는 이 산업의 부산물이자,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정면으로 자극하는 대표 별미다. 악어는 관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관광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과거 여행이 며칠 혹은 몇 주 동안의 단기 체류라면, 이제는 몇 달 동안 한 도시에 머무르며 일과 생활, 여행을 동시에 영위하는 ‘장기 체류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관광객이라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 거주자에 가깝다. 관광 산업은 이들의 소비를 필요로 하고, 도시는 이들을 끌어들여 지역 경제를 유지하고자 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증가는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됐다.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보편화되며 일과 장소의 연계가 약해졌고,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에 따라 여행사는 항공권 판매보다 장기 숙박과 지역 경험을 묶은 상품을 확대했고, 도시는 노마드를 위한 비자 제도와 커뮤니티 인프라 개선에 나섰다. 관광을 넘어 도시 경쟁의 새로운 축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소비 방식과 이동 패턴이 기존 관광객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명소 중심의 짧은 소비보다 일상형 소비가 크다. 카페에서 하루 종일 업무를 보고, 가까운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매하며, 주거지 주변 소규모 문화 공간을 찾는다. 여행객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의 하나로 스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