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프놈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툴슬렝은 원래 고등학교였다. 교실은 감방으로 바뀌었고, 칠판은 고문 기록으로 대체됐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체제의 내부였다. 캄보디아는 이 공간을 철거하지 않았다.
툴슬렝은 국가가 실패했던 순간을 보존한 장소다. 영광도, 승리도 아닌 붕괴의 기록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이런 기억을 지운다. 캄보디아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툴슬렝은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 기관이었다. 체제에 의심받은 이들은 이곳을 거쳐 처형장으로 이동했다. 국가 폭력은 비밀이 아니었다. 행정처럼 운영됐다.
이 공간은 권력이 어떻게 일상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교실 배치는 그대로 유지됐다. 질서는 유지됐고, 인간성만 제거됐다. 국가는 폭력을 구조 안에 배치했다.
툴슬렝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다. 수감자 기록, 사진, 자백 문서가 남아 있다. 학살은 감정이 아니라 행정으로 실행됐다. 체제는 스스로를 문서화했다.
그래서 이 장소는 예외가 아니다. 크메르루주 국가 자체의 축소판이다. 이곳을 보면 정권의 성격이 드러난다. 툴슬렝은 국가의 내부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1975년 크메르루주는 프놈펜을 장악했다. 도시는 비워졌고, 국가는 농촌으로 이동했다. 지식인과 도시인은 제거 대상이 됐다. 체제는 순수성을 강요했다.
툴슬렝은 그 과정에서 중앙 수용소로 지정됐다. 반역은 상상만으로도 처벌 사유가 됐다. 자백은 강요됐고, 무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체제는 공포로 유지됐다.
이곳의 운영 방식은 철저했다. 고문은 규칙에 따라 실행됐다. 기록은 꼼꼼히 남겼다. 국가 폭력은 즉흥적이지 않았다.
1979년 정권이 붕괴했을 때, 이 공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철수할 시간이 없었다. 기록은 폐기되지 못했다. 학살은 증거를 남긴 채 끝났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정권 붕괴 이후 툴슬렝은 곧바로 박물관이 됐다. 캄보디아는 이 장소를 봉인하지 않았다. 기능을 바꾸지 않았다. 의미만 전환했다.
이 선택은 정치적이었다. 국가 폭력을 개인 범죄로 축소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책임은 체제에 있었다. 국가는 이를 인정했다.
툴슬렝은 국제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정 대신 공개를 택했다. 침묵 대신 기록을 유지했다. 국가는 기억을 외교 자산으로 삼았다.
동시에 이 공간은 국내 논쟁을 낳았다. 너무 잔혹하다는 이유로 철거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국가는 유지 결정을 반복했다. 선택은 명확했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의 툴슬렝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다. 그러나 이곳은 소비되지 않는다. 설명은 절제돼 있다. 감정 유도는 최소화됐다.
캄보디아는 판단을 관람자에게 넘긴다. 국가는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기록을 남긴다. 책임의 방식이다.
이 공간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 정치와도 연결돼 있다. 권력 집중과 통제에 대한 경고로 기능한다. 국가는 과거를 현재에 배치했다.
그래서 이 장소는 현재진행형이다. 박제된 비극이 아니다. 선택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국가는 여전히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을 점검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툴슬렝은 캄보디아의 불편한 얼굴이다. 숨기고 싶은 기억을 전면에 둔 국가다. 용서보다 기록을 선택했다. 망각보다 공개를 택했다.
이 장소를 통해 캄보디아는 말한다. 국가는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실패를 지우지 않는다. 이것이 캄보디아가 선택한 국가의 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