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유명하다는 집은 늘 붐빈다. 그러면 여행자는, 붐비는 그 줄의 한 사람이 된다.
도쿄를 처음 찾은 이지호(26) 씨는 ‘SNS 인기 라멘집’을 목표로 신주쿠역 인근의 가게를 향했다. 맛은 보장된다는 후기, 별점 4.7. 도착 예정 시간은 점심 피크 전인 오전 11시 20분. 완벽한 계획이었다.
문제는, 출구를 잘못 나왔다는 것. “도쿄역이랑 신주쿠역, 지하철 출구가 너무 많잖아요. 구글맵이 계속 ‘위성 신호를 재탐색 중’이라 뜨고, 제가 그냥… 길을 잘못 든 거죠.”
애써 다시 찾으려다 포기했다. 배는 고팠고, 다시 지도를 켜기엔 배터리가 12%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찾은 건 지도에 등록조차 안 된 작은 라멘집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진짜는 조용히 거기 있었다
그 가게는 영어 메뉴판도 없고, 점원도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티켓을 뽑고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조명이 어둡고, 실내는 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라멘이… 너무 진했어요. 국물 맛이 세고, 삶은 계란에서 처음 먹어보는 감칠맛이 났어요. 이름도 몰라요. 지금도요.”
그는 가게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다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정보 없음’은 불안하지만, ‘발견’은 직접 해야 한다
요즘 여행자에게 정보는 필수이자 무기다. 인스타그램 위치 태그, 네이버 블로그 후기, 구글 평점과 영업시간까지 - 스마트폰 하나로 낯선 도시는 투명하게 열린다.
그런데 그 모든 정보를 뚫고 얻는 ‘우연한 발견’은 계획된 여행이 절대 줄 수 없는 감정을 만든다.
“그 라멘집이 맛집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그런데 제가 그걸 ‘발견’했다는 기분이, 여행을 여행답게 만든 거 같아요.”
진짜 현지는, 데이터 바깥에 있다
관광연구자들은 이런 경험을 ‘비계획적 몰입’이라 부른다. 계획과 상관없는 경로에서 얻게 된 경험이, 더 주관적인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여행 심리학자 김해진 박사는 말한다. “여행은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이동 계획’이 아니라, 그 사이의 틈에서 감정을 저장하는 과정입니다. 정보에 기반한 효율보다, 발견에 기반한 경험이 더 오래갑니다.”
‘우연한 식당’은 지도에 핀을 꽂을 수 없다
이지호 씨는 말한다. “다시 찾아가려고 지도에서 거리 이름, 주변 상호, 건물 구조까지 검색해봤는데… 안 나와요. 사라진 기억 같아요.”
그의 기억 속 그 라멘집은, 어떤 공식 가이드에도, 맛집 블로그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그 골목, 그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맛이다.
계획이 틀어져서 만난 한 그릇. 우연이 허락한 한 끼. 그게 ‘여행의 정점’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 실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하되, 일부 인물 및 상황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