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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⑥ 이탈리아 파파 알 포모도로…가난이 만든 풍미, 농가의 미식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토스카나의 언덕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멀리서 올리브 나무 사이로 빨간 지붕들이 보인다. 그 아래 어느 시골 부엌에서는 커다란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올리브유 향이 부드럽게 퍼지고, 익은 토마토의 붉은 숨결이 주방을 가득 메운다.

 

‘파파 알 포모도로(Pappa al Pomodoro)’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태어난 소박한 수프다. 하지만 그 안엔 농부의 손맛, 햇살의 시간, 그리고 ‘버리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다. 남은 빵과 토마토로 만든 단순한 음식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농가의 미식’이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파파 알 포모도로의 탄생은 가난의 시대에서 비롯됐다. 한때 토스카나의 농가에서는 매일 구운 빵이 식탁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빵은 딱딱하게 굳었고, 그것을 버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수프다. 잘 익은 토마토를 으깨 넣고, 마늘과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뒤 바질 잎을 띄워 끓인다. 여기에 오래된 빵을 넣으면, 빵은 국물을 머금으며 다시 살아난다.

 

토스카나의 할머니들은 말한다. “이 수프엔 돈 대신 마음이 들어간다.” 요리를 하는 동안 부엌은 향기로 가득하고, 가족들은 냄비 주위에 모여든다. 냄비를 저을 때마다 토마토의 향이 더 짙어지고, 그 순간의 공기가 이미 한 끼의 행복이다. 요리를 완성하는 건 재료가 아니라, 함께 기다리는 시간이다.

 

흥미롭게도 파파 알 포모도로는 단순한 음식임에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피렌체에서는 마늘 대신 양파를 넣고, 시에나에서는 바질을 듬뿍 넣는다. 어떤 마을은 빵 대신 폴렌타(옥수수죽)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조금씩 변주된 형태는 각 가정의 기억과 사연을 담은 결과물이다. 그야말로 “집집마다 다른 이탈리아의 맛”.

 

파파 알 포모도로는 20세기 초, 소설과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1960년대, 이탈리아 가수 리타 파보네(Rita Pavone)가 부른 ‘Viva la pappa col pomodoro!’라는 노래는 대중문화 속에서 이 수프를 상징하는 명곡이 됐다. 가난했던 농가의 음식이 대중가요의 소재로, 나아가 레스토랑의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금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도 ‘토스카나식 해석’이라며 세련된 형태로 선보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토마토와 빵, 그리고 시간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마음.

 

 

여행 중 이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나 ‘몬탈치노(Montalcino)’를 추천한다. 골목 안의 트라토리아(Trattoria, 가정식 식당)에 들어서면 커다란 냄비에서 김이 오르고, 주인장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은 할머니 레시피야.”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식탁 위의 그릇엔 이탈리아의 햇살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파파 알 포모도로는 이탈리아의 미식이 화려함보다 ‘정직함’에 있음을 보여준다. 재료를 아끼고, 버리지 않고, 남은 것을 새롭게 살려내는 철학. 그것이 이 음식의 진짜 맛이다. 우리는 종종 ‘가난’이라는 말을 결핍으로 받아들이지만, 토스카나 사람들에게 그것은 창의의 시작이었다.


한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입안에는 단순한 수프가 아닌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녹아든다. 파파 알 포모도로는 결국 말한다. “진짜 미식은 풍요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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