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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1] 한 나라, 한 장면⑭ 페루 마추픽추

잃어버린 문명이 국가 정체성이 된 장소
국가 이전의 시간이 오늘을 규정하는 무대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안데스 산맥 깊은 능선 위에 자리한 마추픽추는 페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세계적인 유적이라는 명성과 함께, 페루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호출되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 산 위의 도시는 단순한 고대 유적이나 절경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추픽추는 페루라는 국가가 어떤 과거를 자신의 출발점으로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페루는 스페인 식민 지배 이후 공화국으로 형성된 근대 국가다. 그럼에도 국가의 얼굴은 근대 정치사보다 훨씬 이전의 시간에서 가져온다. 잉카 문명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현재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기능한다. 마추픽추는 국가 이전의 시간이 오늘의 페루를 설명하는 공간이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이 남긴 가장 응축된 상징이다. 정치적 수도도 아니었고 제국의 행정 중심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문명의 기술과 세계관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페루는 이 응축된 상징성을 국가 대표 이미지로 선택했다.

 

이 공간의 석조 기술은 잉카 문명의 수준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접착제 없이 맞물린 돌들은 지금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외부 문명과 명확히 구별되는 기술적 특징이다. 국가는 이 차별성을 정체성의 근거로 삼았다.

 

페루를 설명할 때 리마의 식민 건축보다 마추픽추가 먼저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는 식민의 기억보다 문명의 기억을 앞세운다. 이는 과거 회피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페루는 자신을 정복된 나라가 아니라 문명을 가진 나라로 정의한다.

 

국제사회에서 마추픽추는 페루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국기나 수도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로 작동한다. 외부의 시선은 이 공간을 통해 페루를 인식한다. 국가 대표성은 정치 제도보다 장소에서 형성됐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마추픽추는 15세기 잉카 제국 시기에 건설됐다. 정확한 용도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왕실 거주지, 의례 공간, 천문 관측지라는 해석이 공존한다. 불확실성 자체가 이 공간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 도시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숨겨진 위치에 조성됐다. 접근성보다 상징성과 통제가 우선된 선택이었다. 산악 지형은 방어 수단이자 신성한 배경이었다. 권력은 자연과 결합해 연출됐다.

 

잉카 문명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질서 속에 배치해야 할 존재로 인식했다. 마추픽추의 구조는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다. 문명과 자연의 관계가 공간에 드러난다.

 

스페인의 정복 이후 이 도시는 버려졌다. 식민 권력은 이 공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마추픽추는 파괴되지 않은 채 남았다. 의도하지 않은 단절이 보존으로 이어졌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20세기 초 마추픽추가 국제 사회에 알려지며 상황은 급변했다. 잃어버린 도시라는 서사는 곧 페루의 국가 자산이 됐다. 학술 조사와 관광 개발이 동시에 진행됐다. 공간의 성격은 빠르게 재정의됐다.

 

관광객의 급증은 보존 문제를 불러왔다. 훼손 우려와 접근 제한이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국가는 이용을 관리 대상으로 전환했다. 공간은 정책의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마추픽추는 단순한 유적을 넘어 정치적 자원이 됐다. 국제 무대에서 페루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활용됐다. 과거의 문명은 현재의 국가 브랜드로 재구성됐다. 의미는 확장됐지만 무게도 커졌다.

 

마추픽추는 더 이상 고립된 유적이 아니게 됐다. 세계 유산이라는 지위가 부여됐다. 국가는 이 지위를 전략적으로 관리한다. 변화는 공간을 현재로 끌어왔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날 마추픽추는 페루 관광 산업의 핵심 축이다. 수많은 방문객이 이 산 위의 도시를 보기 위해 나라를 찾는다. 경제적 효과는 분명하다. 그러나 의미는 수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 공간은 페루 내부에서도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준점이다. 근대 국가 이전의 시간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원주민 문화와 국가 서사의 관계도 이곳에서 논의된다. 마추픽추는 내부 논쟁의 중심이다.

 

관광 개발과 보존 정책은 늘 충돌한다.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인지가 문제로 남는다. 선택은 항상 현재의 가치 판단을 반영한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관리된다.

 

그래서 이 공간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의 건축물이지만 오늘의 정책과 연결돼 있다. 사회적 인식 또한 계속 바뀐다. 페루는 여전히 이 장소를 통해 자신을 읽는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마추픽추는 페루가 선택한 국가의 얼굴이다. 식민의 기억보다 문명의 시간을 전면에 배치한 결과다. 국가는 사라진 과거를 복원함으로써 현재를 설명한다. 이 선택은 국가 정체성의 방향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 공간을 이해하면 페루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가 보인다. 동시에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읽힌다. 국가는 기원을 통해 자신을 규정해왔다. 마추픽추는 그 판단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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