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서울역에서 남쪽으로 불과 10분 거리, 한강대교 북단을 향해 걷다 보면 도시의 흐름이 갑자기 멈춘 듯한 공간이 있다. 용산 전자상가와 오피스텔 사이, 유리 외벽 대신 녹슨 철골만 남은 고층 건물 하나가 도시의 하늘을 가르고 서 있다. 한때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예정이던 이 미완의 호텔은 지금 ‘유령 건물’로 불린다.
2006년 착공 당시, 이 프로젝트는 서울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외국계 투자자와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가 참여했고, 부지 주변은 복합상업지구로 개발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금줄이 끊겼다. 공사는 중단됐고, 시공사는 철수했다. 이후 투자사 간의 소유권 분쟁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물은 방치됐고, 철골 구조물은 산화돼 검붉게 변했다. 도시의 심장에서 멈춰버린 시간의 흔적이었다.
낮에는 유리 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철근이 도심의 활기와 대조를 이루고, 밤에는 불빛 하나 없는 실루엣이 하늘을 가른다. 주변은 이미 재개발이 완료돼 고층 빌딩과 호텔이 즐비하지만, 이 한 채만은 과거의 실패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주민들은 이 건물을 ‘용산의 그림자’라 부른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구조물에서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울시는 몇 차례 안전진단을 진행했지만, 소유권 문제로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방치된 철골은 부식이 심해지고, 인근 보행자들은 불안을 호소한다. “밤마다 저 건물을 보면, 개발의 꿈이 아니라 욕심의 그림자가 보여요.”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시민의 말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 유령건물을 단순한 개발 실패로 보지 않는다. 한 전문가는 “이런 미완의 건축물은 도시가 자본 논리에 종속될 때 나타나는 구조적 증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용산 일대는 지난 20년간 수차례 대규모 개발 계획이 추진됐다가 무산됐다. 투자자들의 기대와 투기성 자본이 얽히며, 사업은 늘 중단되거나 변경됐다. 그 결과,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공백이 생겼다.
용산은 오랫동안 ‘서울의 마지막 재개발 퍼즐’로 불려왔다. 한강 조망과 철도망, 상업시설을 결합한 복합개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좌초됐고, 호텔 프로젝트도 멈췄다. 개발의 약속은 불시착으로 끝났다. 지금 남은 것은 철골과 콘크리트뿐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새로운 빌딩이 세워지고, 낡은 구조물은 철거된다. 하지만 이 미완의 호텔은 그 흐름 속에서 홀로 멈춰 있다. 철거도, 완공도 아닌 상태로. 마치 서울이 스스로의 욕망을 거울처럼 비춰보는 장소처럼. 행정은 여전히 이 건물 앞에서 멈춰 서 있다. 소유권이 얽혀 있고, 이해관계가 복잡해 공공이 개입할 틈이 없다. 그 사이 철골은 녹슬고, 구조물은 도심의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이 건물은 단순한 부동산 실패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서울이 지나온 개발의 시대, 자본이 만들어낸 신화의 잔해다. 도시는 잊으려 하지만, 구조물은 기억한다. 녹슨 철근과 금이 간 콘크리트 사이에는, 개발과 욕망, 그리고 좌절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늘도 용산역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바쁘게 걸어간다. 하지만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불이 꺼진 건물 한 채는 여전히 말없이 서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은 미완의 공간이며, 서울의 시간 속에서 멈춰버린 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