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제주도의 중심부로 들어서면, 바다의 짠내가 서서히 사라지고 공기가 바뀐다. 습기가 피부에 닿고, 낯선 냄새가 스며든다. 여기는 곶자왈이다. 곶은 숲, 자왈은 덤불을 뜻하는 제주어다. 용암이 흘러 굳은 위에 자생한 수풀이 얽히고설켜, 그 어떤 인간의 도구도 땅을 제압하지 못한 곳. 그래서 이 숲은 오랫동안 ‘금단의 영역’이라 불려왔다.
사람이 멈춘 자리, 숲이 자란다
곶자왈은 제주 섬의 약 6%를 차지한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으며 만든 비정형 지대에 나무와 덩굴이 얽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했다. 여름에도 기온이 낮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지하에는 1급수 지하수가 흐르고, 공기는 늘 습하지만 맑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곶자왈은 제주의 지하수 함양량의 48%를 담당하고 있다. 한때 무가치한 돌밭으로 여겨졌던 땅이, 사실은 섬의 생명을 지탱하는 심장부였던 셈이다. 제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곶자왈은 바람이 숨 쉬는 곳”이라 말했다. 실제로 곶자왈은 제주 지하수의 원천이자, 섬의 ‘폐(肺)’로 불린다.
개발의 경계선에서
그러나 이 숲의 경계는 언제나 위태로웠다. 2000년대 들어 관광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곶자왈 일대의 소유권이 쪼개졌다. 리조트, 골프장, 펜션단지 등 개발사업이 끊이지 않았고, ‘애월 곶자왈’과 ‘한경-안덕 곶자왈’ 일부는 이미 훼손된 상태다. 2007년에는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 속에 일부 지역이 절개되며 ‘개발과 보존의 충돌’이 본격화됐다. 환경단체들은 지금도 매년 탐방 제한 구역을 점검하며 숲의 경계를 지킨다.
곶자왈의 심장부로 들어서면,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어둠 속에 고사리와 이끼가 뒤엉켜 있다. 습도는 높고, 발밑은 언제나 젖어 있다. 나무줄기에는 이름 모를 착생식물이 붙어 있고, 그 사이로 멸종위기 2급 식물인 비자란, 겨울딸기, 제주고사리삼이 숨 쉬고 있다. 환경부 생태자원조사(2023)에 따르면, 곶자왈 일대에는 1,0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며, 이 중 20여 종은 한반도 고유종이다.
금단의 이유
곶자왈은 사람에게 단순한 숲이 아니라, 경계의 상징이다. 한라산의 신이 머문다는 설화, 정령이 숨어 산다는 민속이 전해진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곶자왈 깊은 곳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었다. 밤에는 안개와 냉기가 내려앉아 방향 감각을 잃기 쉽고, 길이라 부를 만한 곳도 없다. GPS조차 잡히지 않는 구간이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곶자왈 탐방로’가 일부 개방됐다. 제주 동백동산 곶자왈과 안덕 곶자왈은 에코투어 코스로 지정되어, 탐방객이 제한적으로 숲을 걸을 수 있다. 나무 덱과 안내판이 세워졌지만, 진입 제한 구역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사람의 시간은 멈추고 숲의 시간이 시작된다.
숲이 지켜낸 시간
곶자왈의 나무들은 용암 위에서 뿌리를 내린다. 흙이 거의 없는 땅에서, 바위 틈의 수분과 공기만으로 살아남은 생명체들이다. 이 숲이 ‘금지의 숲’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위험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감히 통제할 수 없는 생명의 질서가 이곳에는 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 제주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곶자왈은 개발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멈춰 서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태초의 용암이 굳은 땅 위에서 자라난 숲, 그 속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시간과 공기가 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제주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묻는다. “이 숲은 우리가 보호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보호받는가.”
곶자왈은 여전히 스스로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봄이면 나무 사이로 안개가 흐른다. 사람이 만든 길은 바위틈에서 금세 사라지고, 자연은 묵묵히 그 자리를 되찾는다.
숲의 경계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습한 공기와 함께 돌냄새가 밀려온다.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가장 오래 멈춘 곳, 그리고 동시에 인간이 끝내 벗어나지 못한 공간이다. 곶자왈은 아직도 ‘금단의 숲’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