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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⑰ 중국 피단…천년의 알에서 피어나는 동양의 깊은 맛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피단은 중국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여전히 낯설다. 계란 하나가 장시간의 자연적 변성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음식으로 재탄생한다는 사실은 외국인에게 종종 신비로움과 경계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피단은 단순히 ‘숙성된 계란’이 아니라, 알칼리와 광물이 만들어낸 중국 고유의 식품 과학이며, 지역 식문화의 맥락 속에서 완전히 이해되는 음식이다. 천천히 굳어가는 흰자는 유리처럼 투명한 흑갈색 젤리로 변하고, 노른자는 진득하게 농축되어 풍미를 응축한다. 이 변화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보존 기술이자 기후와 재료가 만든 지혜다. 한입 베어 물면 특유의 암모니아 향과 크리미한 질감이 어우러지는데, 처음엔 생경해도 곧 깊은 맛이 남는다. 피단은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 그 미묘한 경계가 중국 식탁의 시간성과 맞닿아 있다.


 

 

피단의 기본 구조는 단순하다. 주재료는 오리 알, 그리고 이를 감싸는 흙·재·석회·소금·차잎 등의 혼합물이다. 이 재료들이 하는 일은 부패를 멈추고 알 내부의 단백질과 지방을 화학적으로 변성시키는 것인데, 이 과정 덕분에 피단은 열을 가하지 않고도 완성된다. 전통 제조 방식에서는 벼 껍질, 찻물, 석회(알칼리성 물질), 식염, 점성이 있는 황토가 섞인 반죽 속에 알을 묻는다. 이후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천천히 침투하는 알칼리 작용이 단백질의 결합 구조를 바꾸며, 고체 젤 형태로 변한다. 이것은 단순한 삭힘이 아니라 PH 변화가 주도하는 ‘화학적 숙성’에 가깝다.

 

가장 알려진 특징은 흰자의 색이다. 검은빛이 감도는 갈색 젤리가 투명하게 빛나는데, 이는 단백질이 열이 아닌 알칼리 환경에서 변성되며 생기는 구조 변화다. 노른자는 농황색에서 녹갈색으로 어두워지며 특유의 크리미한 질감을 얻는다. 표면에 나타나는 흰색 소나무 잎 모양의 결정은 ‘송화(松花)’라고 불리는데, 이는 아미노산과 미네랄이 결정을 이루며 만들어지는 피단만의 상징적 패턴이다. 피단 가운데서도 송화가 뚜렷할수록 품질이 좋다고 여겨진다.

 

피단의 역사는 최소 명나라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년 전 수로 공사 중 석회수가 흘러들어간 물가에 버려진 오리 알이 시간이 지나 변성되며 식용 가능성이 발견됐다는 구전도 있다. 문헌상 기록은 명·청대 요리집과 의학서에 반복 등장하는데, 피단이 단순한 간식에서 약용 및 보존 식품으로 중요하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중국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특히 발달했으며, 광둥·장쑤·후난 등지에서 각각 다른 풍미와 질감의 피단이 만들어진다.

 

피단이 중국 식문화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의외로 실용적이다. 단독으로 먹는 경우도 많지만, 대개는 향을 완충하거나 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재료와 함께 사용된다. 대표적인 요리가 ‘피단두부’. 부드러운 두부가 피단의 농축된 풍미를 부드럽게 중화하고, 간장과 마늘, 고추기름이 더해지면 오히려 산뜻한 조합을 만든다. 죽 요리에서도 피단은 빠질 수 없다. 고기나 생선 육수 대신 피단을 넣어 감칠맛을 더하고, 쌀의 단순한 단맛을 깊게 만든다. 중국 북부에서는 찜 요리나 냉채로, 남부에서는 국물 요리의 풍미 강화용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외국인에게 피단이 호불호 음식으로 남는 이유는 향 때문이다. 숙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암모니아 향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강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적절한 숙성이 이뤄진 피단일수록 향이 부드럽고 촉촉하며 크리미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발효식품처럼 ‘풍미의 층위’를 즐기는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며, 많은 중국인은 피단을 자극적이라기보다 ‘농축된 맛’을 가진 재료로 인식한다.

 

오늘날의 상업용 피단은 위생적 기준에 맞춘 현대식 제조 기술을 적용한다. 알칼리성을 조절한 혼합액에 일정 기간 담가두는 방식으로, 과거의 흙 반죽보다 관리가 용이하다. 이는 식품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전통의 맛을 유지하는 절충점이다. 또한 지역 브랜드화가 진행되며, 송화 패턴을 강조하거나 질감 개선에 초점을 맞춘 고급 피단도 다수 등장했다.

 

피단을 이해하는 핵심은 ‘변성된 단백질의 맛’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조리 과정이 불·열·기름이라는 외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면, 피단은 단지 시간과 광물이 만들어낸 식감과 풍미가 전부다. 이 점에서 피단은 아시아 전통 보존식품 중 가장 정교하고 과학적인 산물 중 하나다.


피단은 흔히 외국인에게 난도가 높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 피단은 특수한 별미가 아닌 일상 속 재료다. 시간이 깊게 스며든 풍미와 알칼리 변성이 만들어낸 독특한 질감은 익숙해지면 오히려 음식의 층위를 넓혀 준다. 피단을 둘러싼 오해는 대부분 ‘낯섦’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한입 맛을 보면 단순한 이색 식재료가 아니라 중국 조리 문화의 근본에 가까운 음식임을 알게 된다. 피단은 보존과 적응의 산물이자 지역성·재료·기후가 만든 결론이다. 음식의 시작은 계란 하나지만, 그 안에는 중국 식문화가 겪어온 시간과 축적의 맛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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