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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칭다오, 1903년을 품은 맥주의 성지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도심 한복판,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초록색 캔이 줄지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과거의 산업 유산과 현재의 관광 열기가 가장 선명하게 교차하는 공간, 그 중심에 자리한 곳이 바로 칭다오 맥주박물관이다. 묵직한 시계탑과 유럽풍 외벽, 그리고 지붕 위 대형 맥주 캔 조형물은 이 도시가 무엇으로 기억되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이곳의 시작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조계 시절 세워진 양조장은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맥주 공장 가운데 하나였다. 외벽에 새겨진 ‘1903’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연도가 아니다. 칭다오가 세계 맥주 지도에 이름을 올린 출발점이자, 도시 정체성의 기원이기도 하다. 독일식 라거 제조 기술은 전쟁과 정권 교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맥주박물관에는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장이 일본을 거쳐 중국 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설비와 운영 주체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양조 기술자들은 기존 제조 방식을 고수하려 애썼다고 한다. 한 노(老) 기술자는 “정권은 바뀌어도 맛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레시피는 국적을 달리해도, 거품의 결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조금 유쾌하다. 과거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맥주 효모가 피부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일부 직원들이 효모를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박물관 기념품 매대에 진열된 ‘맥주 효모 화장품’은 그 시절의 풍문이 산업 아이디어로 발효된 결과다.

 

 

현재의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기능한다. 양조 설비와 역사 자료를 둘러본 뒤, 관람객들은 갓 생산된 생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유리잔에 따르는 순간 부풀어 오르는 거품은, 박물관을 찾은 이들에게 가장 직관적인 역사 체험이 된다. 전시실의 설명문보다 한 모금의 청량함이 더 설득력 있게 1903년을 증명한다.

 

건물 앞 광장에는 대형 맥주병과 회전목마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붉은 벽돌과 노란 외벽, 그리고 초록 캔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색 대비는 이곳이 산업 시설이자 도시의 상징물임을 동시에 말해준다.

 

칭다오 맥주박물관은 한때 생산의 현장이었고, 이제는 기억의 공간이 됐다. 그러나 발효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붉은 벽돌 사이로 스며든 맥주 향, 지붕 위에 늘어선 캔 조형물, 그리고 유리잔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는 미세한 거품까지. 이곳에서는 도시의 시간이 병입돼 있고, 역사는 오늘도 천천히 숙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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