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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⑱ 인도네시아 나시 레막…코코넛 향으로 여는 아침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자카르타의 분주한 아침, 교차로마다 뜨거운 연기와 코코넛 향이 뒤섞인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은 길가 포장마차에 들러 일회용 종이포장을 건네받는다. 그 안에는 ‘나시 레막(Nasi Lemak)’이 있다. 밥 한 숟가락에서 코코넛 밀크의 은은한 단향(甘香)이 올라오고, 그 위에 Sambal 소스의 칼칼한 매운맛, 땅콩과 멸치의 고소함, 반숙 달걀의 풍미가 조화롭게 얹힌다. 단순한 한 끼 같지만, 이 밥 한 그릇에는 인도네시아의 다문화적 뿌리와 동남아 해양 무역의 역사가 포개져 있다. 무엇보다 나시 레막은 아침을 ‘가볍게’ 여는 음식이 아니라, 하루를 풍성하게 시작하는 지역의 생활 방식 그 자체다.

 

 

나시 레막은 흔히 말레이시아의 국민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일상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이다. 특히 수마트라 지역에서는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을 일상식으로 즐기는 전통이 오래되었고, 자바와 발리에서는 현지식 Sambal과 함께 접목되며 ‘인도네시아식 나시 레막’이 완성됐다. 기본 구조는 단순하다. 쌀을 코코넛 밀크와 판단 잎(동남아에서 향을 내는 기본 허브)과 함께 천천히 끓여 밥을 짓는다. 밥알은 윤기가 흐르고, 씹으면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오래 남는다.

 

여기에 Sambal(삼발), 멸치튀김, 구운 땅콩, 오이, 반숙 달걀이 올라가면 한 접시가 완성된다. Sambal은 인도네시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스 중 하나로, 지역마다 점도가 다르고 매운맛도 제각각이다. 어떤 곳은 매콤달콤하고, 어떤 곳은 생선 발효 향이 강하다. 때문에 같은 나시 레막이라도 도시·섬마다 맛의 개성이 뚜렷하다.

 

나시 레막의 기원은 동남아 해양무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코코넛 밀크와 향신료가 풍부했던 바다 항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코코넛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했고, 포르투갈과 아랍 상인의 영향으로 향신료 사용이 강화됐다. 밥에 향을 입히는 방식은 ‘지친 노동자에게 고열량·고지방 음식을 제공한다’는 실용성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나시 레막은 아침에 먹어도 배가 든든하고, 이동하며 먹기 좋아 도시인들에게 최적의 한 끼로 남아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나시 레막은 종이 또는 바나나잎에 삼각형 모양으로 싸서 팔리는 경우가 많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손님들에게 빠르게 내놓기 위한 방식이다. 반면 레스토랑에서는 치킨 렌당, 소고기 세마르, 튀긴 템페 등 다양한 토핑을 얹어 ‘럭셔리 나시 레막’으로 변주한다. 최근에는 자카르타의 카페 문화가 확산되면서, 아보카도 스무디나 라떼와 나란히 놓이는 ‘뉴 트로피컬 푸드’로도 소비되고 있다.

 

여행자가 이 요리를 맛볼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조화’다. 고소함·단향·매움·짭짤함이 과하지 않게 어우러진다. 음식의 강렬함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요리 사이에서 나시 레막은 의외로 부드럽고 따뜻한 첫인상을 준다. 그래서 처음 방문한 이들도 쉽게 받아들인다. 지역의 기후, 재료, 무역의 역사, 일상의 리듬이 한 접시에 잘 녹아 있는 요리. 그게 바로 나시 레막이다.

 

나시 레막을 먹고 있으면 인도네시아의 아침이 가진 특징이 보인다. 뜨거운 도시의 열기 속에서 사람들은 향긋한 코코넛 밥과 Sambal의 매운맛으로 하루를 깨운다. 나시 레막은 단지 ‘먹고 지나가는 간단한 거리 음식’이 아니라, 바다의 교역로와 향신료의 왕국을 거쳐온 문화적 흔적이다. 코코넛의 단향, Sambal의 불맛, 토핑의 다양함은 이 나라가 가진 복합적인 민족성과 지역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행자는 그 한 그릇에서 이 나라의 유연함과 느긋함을 맛보게 되고, 그것이 나시 레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결국 나시 레막은 ‘동남아 아침의 집약체’다. 단순한 한 그릇이지만, 그 뒤에는 풍요로운 문화와 삶의 방식이 겹겹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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