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안데스의 능선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길 하나. 좁고 가파른 돌길은 구름 속으로 흔적을 감추고, 발아래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협곡이 펼쳐진다. 페루 잉카 트레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라 불리지만, 그 아름다움은 언제나 위험과 맞닿아 있다. 돌이 부서진 흔적, 4,200m의 공기, 그리고 문명이 사라진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이동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잉카 문명의 잔향 사이를 통과하는 경험이다.
구름 위의 길이 시작되는 곳
잉카 트레일의 전 구간은 약 43km. 수치만 보면 짧아 보이지만, 고도 2,800m에서 시작해 4,200m ‘데드우먼패스’에 이르기까지, 걷는 이들은 매 순간 고산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산소는 얇아지고, 구름은 발밑과 얼굴 사이를 오가며 길의 경계를 지운다. 돌로 이어진 계단은 500년 전 잉카인들이 깎아 만든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래된 돌길은 비에 미끄럽고, 일부 구간은 폭 1m도 되지 않는다. 길 아래로는 강물이 실선처럼 흐르고, 협곡은 먹먹한 어둠으로 가라앉는다.
여행자들은 이 길을 ‘성지’라 부르지만, 잉카인들에게 이 길은 제국의 동맥이자 성소로 향하는 통로였다. 그들은 이 길을 통해 구름의 도시 마추픽추로 들어갔다.
데드우먼패스…숨이 멈추는 고도
잉카 트레일에서 가장 위험하고 상징적인 지점은 4,200m 고지대 와르미와누스카(Warmi Wañusqa), 일명 데드우먼패스다. 지명은 ‘여인이 누워 있는 형상’에서 유래했지만, 실제로 이곳은 “숨이 끊어지는 듯한 고개”라는 의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람은 차갑고 세차며,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체온이 빠르게 떨어진다.
특히 고산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두통, 구토, 호흡 곤란, 균형 상실 - 많은 여행자들이 이 구간에서 포기하거나 후퇴한다. 그러나 정상에 서면 풍경이 바뀐다. 여러 겹의 산맥이 파도처럼 겹치고, 구름은 발밑에서 솟아오른다. 문명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돌과 바람뿐이다.
잉카 문명의 흔적과 사라진 이유
트레일 곳곳에는 작은 석조 유적들이 나타난다. 파타마르카, 사야크마르카, 윈야이 와이나 - 이 작은 유적들은 잉카 제국의 군인과 사제, 전령들이 머물던 장소였다. 이 길은 마추픽추로 향하는 입구 역할을 했고, 문명을 확장했던 제국의 의지가 깃든 공간이다. 그러나 잉카는 스페인 침략 이후 기록 없이 무너졌고, 트레일은 수세기 동안 숲속에 묻혀 있었다. 20세기 중반 일부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후에야, 비로소 세상은 이 길이 잉카 문명의 ‘숨겨진 대동맥’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
아름다움과 위험이 공존하는 길
잉카 트레일이 ‘죽음의 절벽길’이라 불리는 데에는 과장이 없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오래된 돌길은 금세 물기를 머금어 유리처럼 미끄러워지고, 한순간의 부주의는 발끝이 향하는 방향을 바꾸어 버린다.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이면 안개는 길과 절벽의 경계를 삼켜 버린다. 발아래가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허공으로 떨어지는지조차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워져 걷는 이들은 결국 발끝의 감각에 의존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좁은 길 옆으로는 깊이 가늠조차 어려운 협곡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에 나타나는 절벽 구간들은 대부분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위험은 생략된 채 자연이 만들어 놓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면 구조 인력이 도착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은 더 가빠지고, 고산병이 찾아오면 즉시 하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이곳에서 하산은 언제나 ‘내려가는 것’이라기보다 또 다른 위험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 이유는 단순한 여행 욕망 때문이 아니다. 잉카 문명이 남긴 미로 같은 시간 속으로, 지금 이 순간의 몸을 직접 담그기 위해서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돌 하나, 계단 하나, 구름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 하나가 모두 수백 년의 시간을 품고 있어 걷는 이들은 잠시 자신이 과거의 흐름 속으로 편입된 느낌을 받는다.
정적이고 압도적인 산맥의 침묵 속에서 발 아래의 돌이 ‘툭’ 하고 울리는 순간, 걸음 하나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만든 길이 자연의 절벽과 맞닿아 있는 자리에서, 이 길은 여전히 위험을 품은 채 여행자들에게 묻는다. "너는 이곳을 왜 걷는가?"
마지막 계단, 마추픽추가 열리는 순간
트레일의 마지막 구간, ‘태양의 문(Inti Punku)’을 지나면 안개 사이로 마추픽추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대 석조 도시가 산 능선 위에 떠 있는 듯 펼쳐지고, 긴 트레일 동안 누적된 고통과 위험은 그 장면 앞에서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 순간 여행자는 깨닫는다.
이 길은 잉카가 남긴 순례의 길이자, 자연이 허락한 극한의 경로이며, 지금도 인간의 오만과 무력을 동시에 드러내는 금단의 공간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