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키갈리 언덕 위의 공기는 유난히 고요하다. 도시 중심에서 차로 10분 남짓 떨어졌을 뿐인데 소음이 급격히 잦아든다. 낮은 담장과 정돈된 정원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이곳이 100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기리는 집단 묘지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실감난다.
르완다는 이 장소를 숨기지 않았다. 수도 한복판,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기억을 올려놓았다. 제노사이드 메모리얼은 추모 시설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선언문이다. 르완다가 어떤 과거를 통과했고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키갈리 제노사이드 메모리얼에는 약 25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공동 매장돼 있다. 잔디 아래 이어진 콘크리트 묘역이 실제 무덤이다. 이름이 확인된 이들도 있고 끝내 신원을 찾지 못한 이들도 함께 잠들어 있다. 이 숫자 자체가 이미 국가의 역사다.
이곳은 단순한 추모 공원이 아니다. 학살의 전 과정을 기록한 전시관이 함께 운영된다. 사진과 영상, 유품이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방문객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르완다 정부는 이 공간을 교육 현장으로 활용한다. 학생들은 정규 수업의 일부로 이곳을 찾는다. 공무원과 군인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는 기억을 의무로 만들었다.
그래서 메모리얼은 과거를 봉인하는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출발점에 가깝다. 르완다는 이 비극을 피해가지 않는다.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도가 국가의 얼굴이 됐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1994년 르완다에서는 약 100일 동안 집단 학살이 벌어졌다. 후투 극단주의 세력이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를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이웃이 이웃을 공격했고 공동체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국가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학살이 끝났을 때 도시 곳곳에는 시신이 방치돼 있었다. 가족들은 제대로 장례를 치를 시간조차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실과 공포 속에서 하루를 버텨야 했다. 사회 전체가 멈춰 선 상태였다.
정부는 전국에 흩어진 유해를 수습해 공동 묘역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 거점으로 선택된 곳이 수도 키갈리였다. 상징성과 접근성을 동시에 고려한 결정이었다. 기억을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두겠다는 의지였다.
이후 추모관과 전시시설이 단계적으로 들어섰다. 국제 인권 단체와 유가족 단체도 설계 과정에 참여했다. 공간은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명확하게 구성됐다. 애도와 교육이라는 두 기능이 함께 자리 잡았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초기의 메모리얼은 단순한 묘지에 가까웠다. 방문객도 대부분 유가족에 한정됐다. 슬픔을 나누는 내부 공간의 성격이 강했다. 사회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전시와 기록 작업이 강화됐다. 학살 과정, 국제사회의 방관, 이후 재건 과정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자료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됐다. 공간은 살아 있는 아카이브로 변했다.
해외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 외교 사절과 국제기구 관계자, 연구자들이 필수 방문지처럼 찾는다. 르완다 현대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가 됐다. 메모리얼은 국가 이미지와도 직결됐다.
그 결과 이곳은 추모를 넘어 외교 자산이 됐다. 르완다는 비극을 숨기는 대신 공개했다. 투명성이 신뢰를 낳았다. 국가는 기억을 통해 국제사회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의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질서 정연한 도시 중 하나로 평가된다. 치안과 청결, 행정 효율성이 빠르게 개선됐다. IT와 서비스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르완다를 ‘재건의 모델’로 언급한다.
하지만 그 변화의 출발점에는 이 메모리얼이 있다. 발전은 망각 위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과거를 직시하는 태도가 사회적 합의를 만들었다. 기억이 안정의 토대가 됐다.
르완다 정부는 분열을 조장하는 민족 구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후투와 투치 대신 ‘르완다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한다. 메모리얼의 메시지도 같다. 증오보다 공존을 선택하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다. 웃으며 사진을 찍는 장소가 아니다. 천천히 걷고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국가는 방문객에게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키갈리 제노사이드 메모리얼은 르완다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낸다. 상처를 감추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단단함을 만든다. 국가는 약함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강해졌다. 솔직함이 전략이 됐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르완다가 보인다. 왜 안정과 질서를 유난히 중시하는지 이유가 드러난다. 혼란의 대가를 이미 치렀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경험이 배어 있다.
메모리얼은 과거의 무덤이면서 미래의 설계도다. 죽음을 기억하며 삶의 방식을 정한다. 국가는 이 공간을 통해 방향을 수정한다. 기억이 정책을 이끈다.
결국 르완다는 학살 이후에 다시 태어난 나라다. 키갈리 언덕 위의 이 조용한 장소가 그 출발선이다. 국가는 여기서 매번 자신을 돌아본다. 그래서 이 공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