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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특집]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⑤ 서울 5대 궁궐 – 덕수궁

제국의 꿈이 머물던 자리

[뉴스트래블=편집국] 서울 중구 세종대로. 정동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담장 너머로 전각과 서양식 석조건물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은 처음부터 궁으로 설계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는 이곳을 대한제국의 중심으로 밀어 올렸다.

 

덕수궁의 시작은 월산대군의 사저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궁궐이 불타자, 선조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경운궁’이라 불리며 임시 궁궐의 역할을 하게 된다. 폐허가 된 왕조의 중심이 이 작은 공간으로 옮겨오면서, 덕수궁의 운명은 바뀌었다.

 

 

특히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이곳은 제국의 황궁이 됐다.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덕을 오래 누리라’는 뜻. 조선이 아닌 대한제국의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선언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덕수궁은 그 출발부터 과도기의 성격을 띤다. 조선 후기의 전통 전각과 서양식 건축이 공존하는 구조는 다른 궁궐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다. 정전인 중화전은 황제국의 위상을 반영해 2층 월대 위에 세워졌다. 대한제국은 스스로를 황제국으로 격상했고, 건축 역시 그 격을 드러내고자 했다. 중화전 내부의 어좌와 장식은 전통 양식을 따르되, 이전 궁궐보다 더 강한 상징을 담는다.

 

그러나 덕수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전통 전각이 아니다. 궁궐 안에 자리한 서양식 건물들이다. 석조전은 1900년대 초 영국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회색 화강석으로 지어진 3층 구조는 궁궐 풍경 속에서 이질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전통 한옥 지붕 곡선 옆에 직선과 기둥, 발코니가 놓여 있다. 이 장면은 대한제국이 지향했던 근대화의 상징이다.

 

석조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였다.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선언,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의지. 그러나 그 꿈은 길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은 막을 내렸다. 덕수궁은 황궁에서 식민 통치의 한 공간으로 전락했다.

 

덕수궁은 다른 궁궐보다 더 또렷하게 ‘근대’를 보여준다. 전통과 서양식 건축이 충돌하듯 공존하고, 황제국의 상징과 식민의 흔적이 겹쳐 있다. 함녕전은 고종이 승하한 장소이며, 정관헌은 서양식 요소가 가미된 휴식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궁궐은 단일한 시대의 미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충돌과 혼합, 변화의 연속으로 읽힌다.

 

 

정동이라는 입지도 상징적이다. 궁 담장 밖으로는 근대사의 현장들이 이어진다. 선교사 학교, 외국 공사관, 서양식 성당과 관청 건물이 밀집했던 지역. 덕수궁은 전통 왕조의 마지막 궁이자, 근대 도시 서울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다.

 

오늘날 덕수궁을 찾는 이들은 돌담길을 먼저 떠올린다. 계절마다 다른 빛을 띠는 담장과 은행나무, 그리고 저녁이면 조명이 비추는 중화전 일대의 풍경. 다른 궁궐이 고즈넉한 산세에 기대어 있다면, 덕수궁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시간을 버텨낸 궁궐이다. 자동차 소리와 빌딩 숲 사이에서도 전각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서울의 다섯 궁궐 가운데 덕수궁은 가장 작지만, 가장 극적인 서사를 품고 있다. 왕조의 임시 거처에서 황궁으로, 다시 식민지의 공간으로 바뀌는 격동의 시간. 이곳에는 조선의 끝과 대한제국의 시작, 그리고 근대의 좌절이 응축돼 있다.

 

궁궐은 보통 과거의 완성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덕수궁은 미완의 역사처럼 남아 있다. 근대를 향해 뻗어가던 의지와 그 좌절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석조전의 직선과 중화전의 곡선은 서로 다른 시대의 문법을 말한다.

 

덕수궁은 웅장하지 않다. 대신 날것의 시간이 남아 있다. 제국의 꿈이 머물렀고, 그 꿈이 사라진 자리. 서울 한복판에서, 덕수궁은 여전히 묻는다. 근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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