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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기획②] 이탈리아가 질투할 반도, 이스트라

흰 금을 캐는 숲…토스카나 이전의 미식 반도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유럽의 미식 지도를 펼치면 이탈리아 토스카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아드리아해 건너 북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관광지로 소비되기 이전의 유럽을 닮은 반도가 있다. 크로아티아 북서부의 이스트라다. 이곳에서는 트러플이 숲에서 캐어지고, 올리브 오일이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올리며, 토착 품종 와인이 조용히 세계 시장을 두드린다.

 

이스트라의 미식은 레스토랑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붉은 흙과 해풍, 언덕과 숲에서 출발한다. 화려한 수식 대신 토양의 힘으로 설명되는 맛이다. 제2의 토스카나라는 별칭은 비교이면서 동시에 경고다. 아직은 덜 붐비는 이 반도가, 유럽 미식의 다음 장면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테라로사가 만든 맛

 

이스트라의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붉은 흙이다. 철분을 머금은 ‘테라로사(terra rossa)’ 토양은 배수가 뛰어나고 미네랄이 풍부하다. 여기에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긴 일조 시간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농업 환경이 형성된다. 트러플과 올리브, 포도가 한 반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배경이다.

 

특히 토착 품종 말바지아와 테란은 이 땅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말바지아는 해산물과 어울리는 산뜻한 산미와 꽃향기를 지녔고, 테란은 묵직한 탄닌과 깊은 색으로 육류와 조화를 이룬다. 병 속에 담긴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토양의 기록이다.

 

숲에서 시작되는 식탁

 

이스트라 미식의 상징은 단연 트러플이다. 모토분 언덕 아래 미르나 강 유역의 숲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트러플 산지로 꼽힌다. 가을이 되면 사냥개와 함께 숲을 걷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땅속에서 갓 꺼낸 흰 트러플은 얇게 저며 파스타와 오믈렛 위에 올려진다.

 

‘흰 금’이라 불릴 만큼 귀한 식재료지만, 이곳에서는 과시의 대상이 아니다. 숲과 계절, 노동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로 받아들여진다. 매년 열리는 트러플 축제는 단순한 미식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수확을 기념하는 의식에 가깝다.

 

병 속의 아드리아해

 

이스트라 산 올리브 오일은 세계적인 가이드북에서 꾸준히 상위 평가를 받아왔다. 지역 고유 품종인 이스트리아 비엘리차(Istarska Bjelica)로 압착한 엑스트라버진 오일은 강렬한 허브 향과 쌉싸름한 여운을 남긴다. 빵 한 조각에 찍어 먹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농가에서는 수확과 압착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투어를 운영한다. 생산자는 오일의 산도와 향을 설명하고, 방문객은 테이스팅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올리브 오일은 식재료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가 된다.

 

토스카나 이전의 풍경

 

이스트라의 매력은 아직 대규모 관광지로 완전히 소비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소규모 와이너리와 가족 농장은 대형 버스 대신 개별 여행자를 맞이한다. 포도밭 너머로 해가 지고, 언덕 위 마을에서 저녁 종이 울리는 풍경은 과장 없이 담백하다.

 

토스카나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기 전에도 이런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스트라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미식의 완성은 결국 한 접시 위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한 접시가 가장 밀도 있게 구현되는 곳이 있다. 다음 편에서는 바다를 남김없이 쓰는 한 식당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트라 미식의 철학을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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