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여행자가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것은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다. 어떤 이름은 신화와 전설의 무대를 열어주고, 어떤 이름은 인류가 쌓아온 문명의 숨결을 불러낸다. 로마와 카이로는 바로 그런 도시다.
로마라는 이름은 늑대에게 길러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전설로 시작해 제국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영원한 도시(Eternal City)’라는 별칭처럼, 로마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신화다. 반면 카이로라는 이름은 ‘승리’를 의미한다. 969년, 파티마 왕조가 이곳을 건설하며 붙인 이름은 이후 수많은 왕조의 흥망과 저항의 역사를 품어왔다.
여행자가 두 도시를 걷는 순간, 그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와 이야기가 된다. 로마의 광장과 분수대, 카이로의 나일강과 미나레트가 속삭이는 전설 속으로 들어가는 것 - 그것이 곧 이 도시들이 가진 특별한 여행의 시작이다.

◆ 로마, 늑대가 키운 영원의 도시
로마의 시작은 신화 속 형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한 쌍의 쌍둥이가 늑대의 젖을 먹으며 성장했다는 전설은 도시 탄생의 서사를 신화로 끌어올린다. 형 로물루스가 형제를 죽이고 로마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권력과 생존의 상징으로, 도시 이름 속에 깊게 새겨졌다.
오늘날 여행자가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판테온을 거닐며 골목길을 따라 이동하면, 고대 제국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돌바닥 위를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수천 년 전 권력과 신화가 교차하던 순간과 연결된다. 로마의 좁은 골목길과 카페, 광장의 분수 사이를 걷다 보면, 도시의 이름과 역사, 전설이 일상의 풍경 속에 스며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판테온의 거대한 돔 아래에 서면, 로마인들이 신들에게 바쳤던 숭배와 건축의 장엄함이 여행자에게도 전해진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 때조차, 여행자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의 신화와 승리를 이야기하는 장면 속의 목격자가 된다. 로마의 이름을 알고 여행하면, 하루하루의 풍경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으며, 유적과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에서 도시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 카이로, 승리자가 남긴 흔적
카이로(Cairo)라는 이름은 아랍어 ‘알 카히라(Al-Qāhirah)’, 곧 ‘승리자’에서 유래한다. 10세기 파티마 왕조가 수도를 세우며 붙인 이름으로, 이후 수많은 침략과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이름 자체가 도시의 저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여행자가 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바라보며 나일강을 따라 걷다 보면, 카이로의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흐르는 승리와 생존의 서사를 말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활기찬 바자르를 지나며 향신료와 양탄자의 향을 맡고, 나일강 위에서 작은 배들이 부딪히며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볼 때, 여행자는 이름 속에 담긴 역사를 직접 체험한다.
카이로의 오래된 모스크와 궁전, 좁은 골목과 현대식 건물들이 뒤섞인 풍경은 도시가 수백 년 동안 견뎌온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이집트의 왕조와 파티마, 오스만 제국, 현대까지 이어진 역사가 느껴진다. 골목을 가득 메운 상인의 외침, 골동품 가게 창문에 걸린 장신구, 그리고 강가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펠루카(전통 배)는 여행자에게 이 도시가 단순한 과거의 유적지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임을 일깨운다. 이름 속에 담긴 승리와 생존의 서사가 오늘도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여행자는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 이름이 전하는 전설, 여행자가 마주한 역사
로마의 돌길 위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신전의 기둥, 카이로의 저녁 하늘을 물들이는 나일강의 노을은 단순히 오래된 유적이나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전설이 오늘까지 살아남아 여행자 앞에 다시 펼쳐지는 장면이다.
뉴욕과 이스탄불이 정복자의 힘이 새겨진 이름이라면, 로마와 카이로는 전설과 신화가 시간의 강을 건너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이름이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단순히 과거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전설 속 한 장면을 걷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도시의 이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국 여행자의 경험과 겹쳐지며 완성된다. 로마와 카이로의 이름이 전하는 전설은 그렇게, 오늘의 여행자를 또 하나의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불러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