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도시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올려다본다. 성당의 첨탑, 왕궁의 돔, 언덕 위의 성채. 인간은 오래전부터 가장 높은 곳에 상징을 세워왔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가 믿는 가치와 시대의 방향을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산 정상에 서 있는 거대한 조각상도 그 계보 위에 있다. 바로 구세주 그리스도상이다.
이 조각상은 해발 약 700미터의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서 있다. 양팔을 넓게 펼친 모습은 마치 도시 전체를 감싸 안는 듯하다. 높이 약 30미터의 석상과 그 아래 받침대를 합치면 38미터에 이른다. 1931년 완공된 이 작품은 이제 브라질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해안과 산, 그리고 도시가 겹쳐지는 풍경 속에서 그리스도상은 리우의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조각상이 세워진 시기는 브라질 사회가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공화국 체제가 자리 잡아가던 20세기 초, 가톨릭 교회와 시민 사회는 도시를 대표할 상징을 구상했다. 그 결과 선택된 것은 신앙의 상징이었다. 조각상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국가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신의 형상이 도시의 상징이 된 것이다.
건축과 조각은 기술의 산물이기도 하다. 프랑스 조각가 폴 란도프스키와 브라질 엔지니어들이 협력해 설계를 진행했고,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표면은 수천 개의 비누석 타일로 덮여 있다. 거대한 조각상이지만 비누석 타일로 이루어진 표면 마감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형상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많은 손길이 겹쳐진 흔적이 보인다.
이 조각상이 특별한 이유는 위치에 있다. 대부분의 기념비는 도시 안에 세워진다. 그러나 구세주 그리스도상은 도시 위에 세워졌다. 이는 단순한 장식적 선택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고, 조각상은 그 위를 내려다본다. 신앙의 상징이 지리적 풍경과 결합하면서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팔을 펼친 그리스도의 형상은 환영과 보호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바다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배들도 이 모습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리우데자네이루라는 도시의 입구에서, 신의 형상이 방문자를 맞이하는 셈이다. 이 장면은 종교적 상징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이후 세계의 많은 도시가 자신을 상징하는 구조물을 세웠다. 자유의 여신상, 에펠탑, 오페라 하우스 같은 랜드마크는 도시의 얼굴이 된다. 그러나 구세주 그리스도상은 그중에서도 독특하다. 기술과 예술, 신앙이 동시에 결합된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믿음이 시각적 형태로 굳어진 결과다.
이 조각상 앞에 서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인간은 신의 모습을 이렇게 거대한 형태로 만들었을까. 아마도 이유는 단순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믿음은 추상적이지만, 형상은 구체적이다. 사람들은 형상을 통해 믿음을 공유한다.
이 점에서 구세주 그리스도상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마지막 장면처럼 보인다. 만리장성이 제국의 경계를 보여주었다면, 페트라는 숨겨진 도시의 전략을 말했고, 콜로세움은 군중을 조직하는 힘을 드러냈다. 치첸이트사는 하늘을 읽는 지식의 도시였고, 타지마할은 감정을 건축으로 남긴 기념비였다. 마추픽추는 신과 가까운 풍경 속에 세워진 제국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우의 산 정상에 선 그리스도상은 인간이 무엇을 믿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제국도 도시도 결국은 사라지지만, 인간은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다. 그 의미를 가장 높은 곳에 세우는 것이 문명의 오래된 습관이다.
해 질 무렵 코르코바두 산 위에서 바라보면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바다와 산, 그리고 빛으로 가득한 도시 위로 거대한 조각상이 조용히 서 있다. 팔을 펼친 채, 변해가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세계의 불가사의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돌과 벽, 신전과 조각상으로 남겨진 질문들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이어진다. 우리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세우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