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의 이름은 시대의 기억을 품는다. 한때 제국의 중심이었거나, 분단의 상징이었던 이름들은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상하이와 베를린, 두 도시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태어났지만 ‘변화’라는 이름 아래 닮아 있다. 상하이는 바다를 향해 열렸고, 베를린은 벽을 넘어섰다. 이름은 시대의 상처를 품었지만, 두 도시는 그 상처를 미래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이름의 기원을 따라가면 도시의 운명이 보인다. 상하이(上海)는 문자 그대로 ‘바다 위’를 뜻한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황푸강 하구의 작은 어촌이었던 이곳은, 바다로 나아간 이름처럼 세계로 열린 도시로 성장했다. 베를린(Berlin)은 슬라브어 ‘베를(Berl)’에서 유래해 ‘습지’ 혹은 ‘늪’을 뜻한다. 물 위에서 태어난 도시는 산업의 물결과 이념의 격랑을 헤치며, 오늘날 유럽의 중심으로 다시 섰다.

◇ 상하이, 바다의 이름에서 세계의 이름으로
상하이는 중국 근대의 문을 연 도시다.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개항되면서 서양의 자본과 문화가 밀려들었고, 조계지 시대를 거치며 동서양이 교차하는 공간이 됐다. 이름 그대로 ‘바다 위의 도시’는 세계로 향하는 출발점이자, 중국 근대화의 실험장이었다.
오늘날 상하이는 고층 빌딩이 솟은 금융 중심지로, ‘동방의 뉴욕’이라 불린다. 푸둥의 스카이라인과 와이탄의 유럽풍 건물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식민과 저항, 개방과 통제의 복잡한 역사가 겹쳐 있다. 상하이의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흡수해온 거대한 도시의 기억이다.
밤이 내리면 황푸강의 유람선 조명 아래, 상하이는 다시 빛난다. 그것은 단순한 도시의 불빛이 아니라, 바다 위에서 스스로의 이름을 증명해온 도시의 자화상이다. 상하이는 여전히 ‘바다로 향하는 도시’이며, 동시에 ‘미래를 향한 이름’이다.

◇ 베를린, 분단의 상처 위에서 다시 태어난 이름
베를린은 이름부터가 땅과 물의 경계에 서 있다. 습지 위에서 자란 도시는 근대 유럽의 격동 속에서 수차례 이름을 새로 썼다. 제국의 수도였던 시절, 전쟁과 폐허의 도시였던 시절, 그리고 분단과 통일의 상징이 된 오늘까지 - 베를린의 이름은 언제나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1961년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이었다. 도시를 가르던 콘크리트 벽은 동과 서를 나누었지만, 동시에 ‘하나의 도시’라는 이름을 더 강하게 남겼다. 1989년 장벽이 무너진 그날, 베를린은 단순히 통일의 공간이 아니라, 상처를 껴안고 다시 태어난 세계의 도시로 거듭났다.
오늘의 베를린은 과거를 숨기지 않는다. 브란덴부르크문, 홀로코스트 추모비, 이스트사이드갤러리의 그래피티는 모두 ‘기억의 도시’를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은 예술과 기술, 젊음이 뒤섞인 창조의 도시다. 상처를 덮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이름을 쌓아올린 곳 - 그것이 베를린의 정체성이다.
◇ 이름은 상처를 품고, 도시는 그 위에 미래를 세운다
상하이와 베를린. 두 도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같은 진실에 닿는다. 이름은 과거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기억을 품은 증거다. 상하이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며 세계를 품었고, 베를린은 벽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품었다. 바다와 벽, 개방과 분단 - 서로 다른 단어 속에서 두 도시는 변화의 의미를 공유한다.
오늘의 여행자가 두 도시에 선다면, 이름의 무게는 풍경보다 깊게 다가올 것이다. 황푸강의 바람과 슈프레 강의 물결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속삭인다. 이름으로 읽는 도시, 그 열 번째 여정은 그렇게 ‘변화’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름은 여전히, 다음 도시의 문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