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세상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방식으로 숙성되는 음식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그린란드 이누이트가 만드는 발효 요리 ‘키비악(Kiviak)’은 극지 생존음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먹는 순간까지,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하는 음식. 바다표범의 가죽을 벗겨내 속을 비우고, 그 안에 수백 마리의 작은 바다새(주로 오크, Auk)를 통째로 넣는다.
깃털, 내장 그대로. 그리고 가죽을 다시 꿰매 바다표범의 기름으로 봉한 뒤, 빙설 아래 파묻어 수개월에서 길게는 반년 이상을 발효시킨다. 비교적 따뜻한 여름에도 곰이나 개가 파헤치지 않도록 큰 돌을 눌러 덮는다. 이를 꺼내는 시점은 겨울. 조상들이 북극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비축 식량. 그러니 냄새와 비주얼에 놀라기 전에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생존의 역사다.
이누이트에게 사냥은 단순히 먹을 것을 얻는 행위가 아니다.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의식이자, 계절과 생태를 읽는 기술이다. 키비악이 탄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한의 겨울, 바다사냥이 수주간 막혀 고기 한 점 구하기 어려울 때. 여름에 잡아 놓은 바다새 떼가 가죽 속에서 익어가며 귀중한 지방과 단백질을 선물한다. 북극 특유의 낮은 온도와 이누이트가 터득한 봉제 방식이 부패를 억제하고 발효를 돕는다. 과학적으로 보면 산소를 차단해 젖산발효를 유도하는 셈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먼저 맡는 순간 정신을 잃을 수 있다. 흔히 “고무장갑 속에 갇힌 바다 전체의 냄새”라고 표현된다. 앙금처럼 꺼내지는 새의 내장과 지방은 굉장히 진득하다. 깃털과 뼈는 씹히는 감각을 있다가도 사라지는 독특한 식감을 남긴다. 현지에서는 주로 머리 부분을 손으로 집어 한 입에 쏙 넣고, 뼈만 쏙 뱉는다. 향이 입안 가득 차오르는 순간, 대다수의 여행자는 고개를 젖힌다. 그러나 이누이트는 미소를 짓는다. “발효가 잘 됐군.” 그 말 한마디에 북극의 수천 년 생존 훈련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점은 키비악이 절대적인 가난의 음식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결혼식, 명절, 사냥 성공 축하연 등 특별한 자리에 등장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음식이자, 자연이 준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위생 관리가 미흡하면 봇울리눔(보툴리눔 독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어,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보존과 안전 사이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키비악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있다. 냄새와 비주얼을 극복한 뒤 찾아오는 감정, 생존을 위해 자연과 타협해온 인류의 지혜에 대한 깊은 존경심 때문이다. 한때 서구 언론은 키비악을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음식”이라 선정했지만, 이누이트에게 이는 자랑이다. 자연이 허락한 최소한을 이용해 혹독한 계절을 견뎌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손에 들린 한 마리 새가, 사실은 겨울을 버티게 해 준 조상들의 생명줄이었던 셈이다.
키비악은 단순히 “도전 음식”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 속에는 북극의 풍경, 야생동물과의 공존, 변덕스러운 계절에도 꺼지지 않는 생존 의지, 기술이 아닌 경험으로 전승된 지혜가 담겨 있다. 누군가에겐 경악할 발효, 누군가에겐 생명을 지켜온 발효. 이 차이가 바로 여행이 놓치는 세계의 단절을 잇는다.
바다표범 가죽 아래 묻혀 있던 비밀을 열어젖히는 순간, 한 입의 음식이 문명의 서사가 된다. 냄새는 강하지만,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강하다. 먹는 이의 용기가 발효되고, 조금은 다른 세계를 받아들일 마음까지 발효되는 순간. 그래서 키비악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