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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기획] 레이캬비크 & 마라케시…이름 따라 도시 여행 ⑪

극과 극의 이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의 이름은 문명만큼이나 자연을 닮는다. 얼음과 불, 바람과 모래, 이 모든 요소가 인간의 삶을 바꾸고 그 흔적을 이름 속에 새겨왔다. 북극권의 끝에서 태양을 기다리는 도시 레이캬비크와, 사하라의 문턱에서 불빛을 품은 마라케시는 서로 닮지 않은 듯하지만, 둘 다 자연과 인간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두 도시는 극과 극의 풍경 속에서 ‘공존의 의미’를 묻는다.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문명의 중심에서 벗어나 자연의 본질에 다가서는 순간이 있다. 인간이 만든 도시가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공간. 불과 얼음, 모래와 바람이 만들어낸 두 세계의 이름 속에는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이 함께 녹아 있다.

 

 

◇ 레이캬비크, 불과 얼음이 빚은 이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ík)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만(灣)’을 뜻한다. 9세기경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바이킹 인그올프 아르나르손이 이 땅에 도착했을 때,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를 보고 이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땅. 활화산과 빙하, 용암대지와 온천이 얽혀 있는 이곳에서 ‘연기’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생존의 상징이었다.

 

도시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한다. 겨울의 긴 밤과 여름의 끝없는 낮, 눈보라와 북극광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의 변형’을 경험한다. 레이캬비크의 건축과 문화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온천수가 도심을 덮고, 용암석으로 만든 건물이 바람을 막는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지 않고, 그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방식이 이름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행자가 레이캬비크를 찾으면,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먼저 바람의 냄새와 빛의 결을 느끼게 된다. 도시의 이름은 여전히 자연의 숨결을 품은 채, 불과 얼음의 경계에서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 마라케시, 붉은 흙과 빛의 도시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중심 마라케시(Marrakech)는 베르베르어로 ‘신의 땅’을 의미한다. 11세기 알모라비드 왕조가 세운 이 도시는 붉은 점토로 지어진 성벽과 건물 때문에 ‘붉은 도시’라 불린다. 사하라 사막과 아틀라스산맥이 맞닿은 이곳에서 붉은 흙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였다.

 

마라케시의 이름에는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한다. 낮에는 사막의 열기와 모래폭풍이, 밤에는 천 개의 등불이 만든 신비로운 그림자가 도시를 감싼다. 제마 엘프나 광장에선 불빛과 향신료 냄새, 타악기의 리듬이 얽혀 하나의 언어가 된다. 여행자는 그 속에서 도시의 이름이 단순한 지명을 넘어 ‘감각의 기억’임을 느낀다.

 

마라케시는 유목민의 지혜와 제국의 흔적, 그리고 예술가들의 낭만이 만나는 도시다. 붉은 성벽은 시간의 색으로 바래가지만, 도시의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이름 속에는 인간이 자연과 타협하며 살아온 역사가 깊게 스며 있다.

 

◇ 극과 극의 도시, 하나의 이름으로 이어지다

 

레이캬비크와 마라케시는 북쪽과 남쪽, 얼음과 모래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같다. 자연의 경계에 맞서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 도시들이다.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려던 시대를 지나, 이제 두 도시는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새 시대의 가치를 말한다.

 

여행자는 이 두 도시의 이름을 통해 깨닫는다. 문명은 자연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레이캬비크의 온기와 마라케시의 열기는 결국 같은 메시지로 귀결된다. 자연 속에서 살아남는 일은, 그 자체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이다.

 

도시의 이름은 결국 인간이 자연에게 남긴 시(詩)다. 연기의 만에서, 신의 땅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불씨를 지핀다. 얼음의 연기와 사막의 빛이 만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것은 세계의 끝에서 시작된, 또 다른 시작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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