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의 이름은 때로 바다의 언어로 쓰인다. 육지의 끝에서 시작된 탐험과 항해, 바람의 방향을 따라 세워진 이름들은 세계의 경계를 넓혀왔다. 케이프타운과 리스본, 두 도시는 바다의 문턱에 서서 인류의 여정과 운명을 바꾼 이름이다.
한쪽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 다른 한쪽은 유럽의 서단에 자리 잡았다. 이 두 도시는 지리적 끝에서 출발했지만, 동시에 세계의 시작을 열었다. 그들의 이름에는 두려움과 용기, 그리고 바다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도전이 녹아 있다. 오늘, 우리는 항해의 도시로 불리는 두 이름의 기원을 따라간다.

◇ 케이프타운, 희망과 절망이 만나는 끝의 이름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은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라는 이름에서 태어났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1488년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는 그것을 ‘폭풍의 곶(Cabo das Tormentas)’이라 불렀다. 거센 바람과 난류로 인해 수많은 배가 침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 왕 주앙 2세는 그 이름을 ‘희망의 곶(Cabo da Boa Esperança)’으로 바꿨다. 미지의 인도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이 그 이름에 담겼다.
그 후 케이프타운은 단순한 중간 기착지를 넘어, 인도양과 대서양을 잇는 세계 교역의 관문이 됐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곳에 보급 기지를 세웠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은 식민지와 인종차별, 노예무역의 거점이기도 했다. 이름이 ‘희망’을 품었지만, 역사는 ‘불평등’과 ‘억압’을 함께 새겨 넣었다.
오늘의 케이프타운은 그 모순 위에 서 있다. 테이블마운틴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여행자가 ‘희망봉’을 찾을 때, 그것은 단순한 절경이 아니라 인류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걸어온 긴 여정의 상징이 된다.

◇ 리스본, 바다의 끝에서 세계를 향해 열린 이름
유럽의 서쪽 끝, 대서양을 마주한 리스본의 이름은 고대 페니키아어 ‘알리스 우보나(Alis Ubo)’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뜻은 ‘안전한 항구’. 수천 년 전부터 이곳은 바다를 건너는 이들에게 안식처였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올리시포(Olisipo)’로 불렸고, 12세기 포르투갈 왕국이 세워진 뒤에는 ‘리스보아(Lisboa)’, 오늘날의 리스본으로 정착했다.
리스본의 진짜 이름은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완성됐다.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향해 떠난 항구, 신대륙을 향한 모든 모험이 시작된 곳이었다. 리스본의 골목마다,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 알파마 지구의 언덕마다 항해자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 이름은 ‘바다의 도시’이자, ‘세계의 문’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리스본의 역사는 영광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1755년 대지진과 쓰나미, 대화재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그럼에도 리스본은 다시 일어섰다. 재건된 도시에는 ‘불굴의 항해자 정신’이 살아 있다. 오늘날의 리스본은 유럽에서 가장 따뜻한 빛과 가장 오래된 멜랑콜리를 품은 도시로, 바다를 향한 인간의 그리움을 상징한다.
◇ 바다 끝의 이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증거
대서양의 바람은 두 도시를 닮았다. 리스본의 파두가 들려주는 항해의 그리움은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 위로 흩날리는 바람과 닿는다. 한쪽은 세계의 시작을 향해, 다른 한쪽은 세계의 끝을 향해 서 있지만, 두 도시 모두 바다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진다. 그 이름은 시대를 넘어, 도전과 희망의 언어로 남았다.
도시의 이름은 결국 인간이 바다에게 건넨 시(詩)다. 희망봉의 바람 아래서, 대서양의 빛 위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항해의 불씨를 지핀다. 바람의 곶과 빛의 언덕이 만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것은 세계의 끝에서 피어난, 또 다른 시작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