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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감성 로컬 기획⑦] 경주에서 만난 로마, 시간을 품은 도시의 유산

천년의 돌길 위에서, 고대의 숨결이 되살아나다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경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두께’다. 골목 하나, 돌담 하나에도 천년의 이야기가 묻어 있다. 첨성대가 바라보는 하늘 아래, 석굴암과 불국사의 돌계단을 오르면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유적의 기와와 돌이 품은 색감은 세월이 깎아낸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과 더불어 완성된 예술처럼 느껴진다. 이 고요하고 단단한 공간은 어쩐지 로마의 포룸이나 콜로세움을 떠올리게 한다. 두 도시는 다른 대륙에 있지만, 인간이 시간을 기록하고 남기려 한 마음은 같다.

 

로마를 걷는 일은 과거의 제국을 걷는 일이다. 경주를 걷는 일은 천년 왕국의 흔적을 더듬는 일이다. 돌기둥과 아치, 탑과 석등은 모두 인간이 세운 문명의 흔적이며, 지금도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숨 쉰다. 경주의 월성지와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정원을 품고 있고, 로마의 트레비 분수는 고대의 물길을 현재로 끌어왔다.

 

 

서로 다른 문화권이지만, 두 도시 모두 ‘물’과 ‘돌’이라는 재료로 시간의 미학을 조각해왔다. 낮의 햇살이 비칠 때, 경주의 기와와 로마의 석재는 비슷한 색으로 빛난다. 세월이 만들어낸 빛의 온도가 같다.

 

두 도시는 또한 종교와 예술의 흔적 속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경주의 불국사는 불교 예술의 극치며, 석굴암의 미소는 신라 미학의 절정이다. 로마의 바티칸과 성당들은 서양 예술의 중심이자 믿음의 공간이다.

 

시대와 신앙은 다르지만, 두 도시는 모두 ‘신에게 다가가려는 인간의 예술적 열망’을 품고 있다. 석굴암의 석조 불상과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은 모두 인간이 완전함을 향해 나아간 기록이다. 경주의 탑과 로마의 돔은 하늘을 향한 건축의 시도며, 그 안에는 시대를 초월한 경외가 깃들어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도 닮아 있다. 경주의 골목을 거니는 이들은 조용히 사진을 찍고, 돌담을 쓰다듬으며 시간을 느낀다. 로마의 골목을 걷는 이들 또한 마치 유적의 일부가 된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도시가 사람을 멈추게 한다는 점에서 두 도시는 닮았다.

 

 

경주가 한국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면, 로마는 서양 문명의 기원이자 현재진행형의 유산이다. 여행자는 이 두 도시에서 ‘현재 속의 과거’를 마주한다. 그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시간을 체험하는 일이다.

 

결국 경주와 로마는 ‘기억의 도시’다. 그 기억은 돌로 세워졌고,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진다. 경주의 황남동 골목에서 들려오는 풍경 소리나, 로마의 광장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모두 시간의 틈새에서 피어난 현재다. 두 도시는 과거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 그 속에서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시간을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천년의 시간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경주의 달빛 아래서나 로마의 석양 속에서나, 시간은 늘 우리 곁을 흐르고 있다. 돌과 물, 빛과 바람이 만들어낸 이 도시들의 풍경은, 인간이 남긴 가장 오래된 시(詩)이자 가장 현재적인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품에서, 여행자는 잠시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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