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첫 입에 눈썹이 찌푸려지고, 두 번째 입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리고 세 번째 입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바로 일본 스시의 조상, 나레즈시(Narezushi)다.
비릿함과 산미가 공존하는 낯선 풍미, 그리고 수백 년 이어온 발효의 미학이 이 한입에 담겨 있다. 일본인에게 나레즈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인내와 정성,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철학이다. 여행자는 그 한입으로 일본의 ‘시간’을 맛본다.

나레즈시는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초밥, 스시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냉장고는커녕 얼음조차 귀하던 8세기 무렵, 일본 사람들은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쌀과 소금으로 발효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결과, 단순한 보존식이었던 나레즈시는 세월을 거치며 하나의 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시가현, 와카야마, 나가노 일대에서는 나레즈시 전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조리 과정은 인내의 연속이다. 먼저 민물고기나 전갱이, 송어 등을 깨끗이 손질해 소금에 절인 뒤 며칠을 재운다. 그다음 절인 생선을 밥과 함께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밀봉한 채,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숙성시킨다. 그 사이 쌀의 젖산균이 생선에 스며들며, 특유의 새콤짭짤한 향을 만들어낸다. 발효가 끝나면 쌀은 버리고 생선만 꺼내 먹는다. 냄새는 다소 강하지만, 씹는 순간 퍼지는 복합적인 풍미는 '시간이 만든 맛'이라 불린다.
처음 나레즈시를 맛보는 여행자는 대부분 놀란다. 입안 가득 퍼지는 발효 향과 짭조름한 산미는 낯설지만, 몇 초 뒤 찾아오는 부드러운 단맛과 감칠맛이 예상치 못한 조화를 이룬다. “이건 음식이라기보다, 세월이 빚은 예술이네요.” 한 외국인 여행자의 표현처럼, 나레즈시는 ‘맛’보다 ‘경험’으로 기억된다.
현지인에게 나레즈시는 ‘시간과 정성의 상징’이다. 지역마다 발효 기간과 생선 종류, 조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집안만의 맛이 존재한다. 명절이나 제사 때 나레즈시를 내는 가정도 여전히 많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향을 맡으면 가족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한 입의 발효 생선이 사람과 세대를 이어주는 것이다.

여행자가 나레즈시를 접하는 장면은 언제나 비슷하다. 낡은 목재 테이블, 작은 그릇에 담긴 누르스름한 생선 한 조각, 그리고 조심스레 코를 가까이 대보는 순간. “음… 냄새가 꽤 강하네요.” 하지만 용기를 내어 한입을 베어 물면, 입안 가득 일본의 역사와 바다의 기억이 퍼져나간다. 짠맛, 산미, 그리고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질감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온 흔적이 느껴진다.
나레즈시는 단순히 ‘옛날 초밥’이 아니다. 그 안에는 바다와 사람, 자연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낸 일본의 정체성이 녹아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그 속에는 세대를 이어온 손의 온기와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냄새는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 문화의 깊이가 있다. 음식은 결국, 한 나라가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오래된 한입을 통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