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스페인 북부의 한 조용한 마을. 박성우(30) 씨는 지도 앱과 오프라인 모드의 배신으로 골목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평일 오전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택시도 없다. 숙소까지는 걸어서 15분 남짓. 문제는 방향이었다. 표지판도, 언어도, 단서라고는 머리 위로 흔드는 핸드폰뿐. 신호는 계속 끊겼고, 성우 씨는 골목을 돌며 허공에 묻는 눈빛으로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건… 강아지?” 순간 성우 씨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회갈색 잡종 강아지였다. 목줄도, 안내 표지도,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잠시 쳐다보고는 조용히 앞서 걸었다. 성우 씨는 어리둥절했지만, 그 발걸음을 따라가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GPS보다 나을지도?”

강아지 안내, GPS보다 정확?
강아지는 몇 걸음 걷다가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따라와!’ 하는 눈빛을 보냈다. 성우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강아지, 지도 앱보다 똑똑한데요?” 5분쯤 뒤, 골목을 한 바퀴 돌자 익숙한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나타났다. 강아지는 목적지 앞에서 멈춰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예측 불가능한 안내가 여행을 유쾌하게 만든다. GPS보다 느리지만, 웃음을 주고, 마음을 놓게 하는 안내자. 여행 중 이렇게 작은 유머가 스며드는 순간, 길을 잃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길을 잃으면 감각이 살아난다
심리학에서는 길을 잃은 상태를 '인지적 개방 상태(Cognitive Openness)'라고 부른다. 방향을 잃으면 사람은 주변 사물과 신호에 더 민감해지고, 작은 존재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강아지의 발자국 소리, 골목의 냄새, 지나가는 바람까지 – 평소라면 지나쳤을 요소들이 여행자의 마음에 각인된다.
SNS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길을 헤매던 여행자가 고양이나 닭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례다. 물론 동물들은 안내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그 존재가 방향과 확신의 힌트가 되고, 이야깃거리가 된다.
우연한 안내, 웃음과 기억을 남기다
숙소에 도착한 후 박 씨는 강아지를 다시 찾아보았지만, 그 후로는 만날 수 없었다. 사진도, 영상도 없다. 하지만 기억은 선명하다. “그때 그 강아지가 없었다면, 한참을 더 헤맸을 거예요. 길을 잃었지만, 덕분에 오래 기억나는 하루가 됐습니다.”
여행은 목적지 도착만이 전부가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예기치 않은 존재와 마주하며, 마음껏 당황하고 웃는 순간이야말로 여행을 여행답게 만든다. 작은 발자국 소리 하나, 예상치 못한 우연 하나가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순간. 데이터와 지도 밖에서, 오직 자신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다.
길 잃음의 묘미, 여행의 묘미
계획과 안내가 다소 빗나갔을 때, 여행은 비로소 살아난다. 길을 잃어도 웃고, 우연한 안내자 덕분에 목적지에 닿는 순간, 하루는 더 오래 기억된다. 지도에도, 후기에도 없는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정점이다.
예상치 못한 골목에서 맞닥뜨린 작은 발견, 발걸음을 따라오던 강아지의 눈빛, 길모퉁이에서 피어난 웃음 – 이런 소소한 경험들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이 아니라, 길을 헤매고, 당황하고, 웃으며, 작은 우연과 기적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의 집합체다.
결국 길을 잃는다는 것은 길을 찾는 것만큼이나 값진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틈새에서 피어난 우연은, 여행자를 한층 더 살아 있는 순간으로 데려가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추억으로 남는다.
※ 실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하되, 일부 인물 및 상황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