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의 이름은 그 땅의 기후와 생명이 남긴 언어다. 얼음과 바람이 만든 도시가 있는가 하면, 햇살과 흙, 초원의 리듬으로 자란 도시도 있다. 헬싱키와 나이로비, 이 두 곳은 지구의 양끝에서 서로 다른 온도를 품고 있지만, 모두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여행자는 북극의 바람이 부는 항구에서부터 적도의 초원까지 이어지는 이름의 궤적 속에서, 인간이 환경과 어떻게 공존하며 도시를 만들어왔는지를 읽게 된다. 오늘은 그 극단의 기후 속에서 피어난 두 도시의 이름을 따라가 본다.

◇ 헬싱키, 얼음 위에 세운 질서의 도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Helsinki)는 한때 ‘한세(Helsing)’라 불리던 스웨덴 이주민들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헬싱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도시명은 16세기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바사가 무역 거점으로 세운 데서 시작된다. 발트해의 차가운 물결 속에서 태어난 이 도시는 북유럽의 질서와 실용이 응축된 공간으로 성장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놓이면서도 헬싱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켰다. 제정 러시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모델로 세운 신도시는 고전주의 건축과 북유럽의 절제된 미학을 결합하며 독특한 도시 풍경을 만들었다. 하얀 돔과 광장이 펼쳐지는 세나토리오 광장은 오늘날까지 헬싱키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오늘의 헬싱키는 ‘디자인의 수도’로 불린다. 혹한의 계절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따뜻한 실내 공간을 만들고, 해가 짧은 북극권의 환경에 맞춰 ‘조용한 혁신’을 이어간다. 얼음과 바람, 침묵의 미학이 만들어낸 도시는 북유럽이 세계에 전하는 가장 인간적인 기술의 이름이 됐다.

◇ 나이로비, 초원 위에 피어난 생명의 이름
나이로비(Nairobi)는 마사이어로 ‘차가운 물의 곳(Enkare Nairobi)’을 뜻한다. 19세기 말, 영국이 우간다 철도를 건설하며 중간 거점으로 세운 이곳은 처음에는 늪지대와 초원뿐이었다. 그러나 그 물과 바람, 야생의 리듬이 도시의 뿌리가 됐다.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다. 철도 노동자와 상인들이 모여들고, 식민지 행정 중심지로 자리 잡으면서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관문이 됐다. 하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자연의 언어’를 품고 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동물들이 뛰노는 국립공원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여전히 물과 흙, 초원과 함께 살아간다.
오늘날의 나이로비는 기술 스타트업과 생태 보존이 공존하는 도시다. ‘그린시티 언더 더 선’이라는 별명처럼, 도시 중심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 이름이 가리키는 ‘차가운 물’은 여전히 도시를 식히며, 새로운 아프리카의 미래를 적셔간다.
◇ 두 개의 계절, 하나의 이름
헬싱키와 나이로비. 얼음과 태양, 침묵과 리듬. 서로 다른 대륙에서 태어난 두 도시는 모두 자연을 품으며 인간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북극의 차가운 빛이 질서를 만들었다면, 적도의 뜨거운 바람은 생명을 불러왔다.
도시의 이름은 결국 인간이 자연에게 남긴 언어다. 얼음의 항구에서 초원의 중심까지,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계절을 살지만 같은 꿈을 꾼다. 그것은 자연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발견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