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불은 인간의 최초의 조리 도구이자, 유목민의 식탁이었다. 끝없는 초원 위, 저녁 노을이 깔릴 때쯤이면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그 위에서 고기가 천천히 구워진다. 터키의 케밥(Kebab)은 바로 그 불에서 태어난 음식이다.
말을 타고 이동하던 유목민들이 소금 한 줌과 불꽃 하나로 만들어낸 생존의 기술은, 세월을 거쳐 세계적인 미식으로 진화했다. 지금은 거리의 패스트푸드가 되었지만, 케밥 한 조각에는 여전히 유목의 바람이 스며 있고, 고기를 굽는 소리는 천년 전 초원의 리듬을 닮았다. 여행자는 한입의 불맛 속에서 인간이 불을 다스리기 시작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케밥의 뿌리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식습관에 있다. 이동이 잦고 저장이 어려웠던 그들은 잡은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먹었다. 쇠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불 위에 올리는 간단한 조리법, 바로 이것이 케밥의 시작이다. 이후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거치며 케밥은 궁정 요리로 발전했고, 다시 거리의 음식으로 내려왔다. ‘케밥’이란 말 자체가 아랍어 카바바, 즉 ‘굽다’에서 유래했다. 말 그대로, 불 위에서 굽는 모든 고기가 케밥이다.
터키에서 케밥은 단일한 음식이 아니다. 지역과 재료, 불의 온도에 따라 수십 가지의 케밥이 존재한다. 아다나 케밥은 잘게 다진 양고기에 고춧가루와 향신료를 섞어 꼬치에 길게 붙인 뒤 숯불 위에서 구운 것이다. 뜨거운 불에 한쪽 면이 살짝 그을릴 때 풍겨오는 향은 터키 남부의 태양만큼 강렬하다. 쉬시 케밥은 우리가 흔히 아는 꼬치구이로, 큼직하게 썬 고기를 하나씩 꿰어 굽는다. 한입마다 육즙이 터지고, 불향이 고소하게 감돈다. 도네르 케밥은 수직으로 세운 고깃덩어리를 천천히 회전시키며 굽는 방식으로,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의 혁신적인 발상이다. 칼끝으로 얇게 썰어낸 고기를 빵 속에 넣으면, 지금의 ‘케밥 샌드위치’가 된다.
케밥의 본질은 ‘단순함’에 있다. 향신료 몇 가지, 불, 그리고 고기. 그러나 이 단순함이야말로 오랜 세월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불 위에서 떨어지는 기름방울이 숯불에 닿으며 ‘치익’ 소리를 낼 때, 그 향은 사람을 불러낸다. 도시의 거리든 작은 마을의 골목이든, 어디든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불 앞에는 언제나 ‘굽는 사람’이 있다. 케밥을 굽는 이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라, 불의 지휘자이자 공동체의 상징이다. 터키 가정에서는 명절이나 잔치 때 남성이 직접 불 앞에 서서 케밥을 굽는다. 그건 음식이 아니라 ‘의식’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케밥은 종교적 의미도 품고 있다. 희생제(Eid al-Adha) 같은 날에는 제물로 바친 양고기로 케밥을 만들어 가족과 나눈다. 고기를 구우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이웃과 함께 먹으며 신의 은혜에 감사한다. 불 위에서 구워진 고기에는 단순한 풍미를 넘어 신성한 시간의 기억이 배어 있다.

여행자가 터키에서 케밥을 맛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빵 위에 케밥 고기를 얹고, 그 위에 버터와 요거트를 부은 이스켄데르 케밥(Iskender Kebab)은 대표적이다. 뜨거운 고기와 차가운 요거트의 대비, 버터의 고소함과 토마토 소스의 산미가 입안에서 녹아든다. 도시의 푸드트럭에서 손에 쥔 도네르 케밥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불맛과 바람, 사람들의 웃음이 섞인 그 한입은, 여행의 피로를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케밥은 불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이어진 음식이다. 그 한 조각엔 고기를 굽던 유목민의 손길과, 오스만 제국의 영광, 그리고 현대 도시의 일상이 공존한다.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고기는 천천히 돌아간다. 세상은 변했지만, 케밥의 리듬은 변하지 않았다. 그 불 앞에서 인간은 다시 원초적인 본능과 마주한다.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삶을 나누는 행위’로서의 식사. 케밥은 바로 그 오래된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유목의 바람이 혀끝에서 다시 불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