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하노이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철판의 ‘탁탁’ 소리. 버터가 녹아내리는 향이 좁은 골목을 채운다. 반쯤 열린 포장마차 안, 바게트가 노릇하게 구워지며 빵 껍질이 살짝 갈라진다. 노점상 주인은 손끝으로 고수를 찢고, 단무지를 건져 올린다. 몇 초 사이에 만들어진 반미 하나가 종이봉투에 싸여 손님에게 건네진다. 그 짧은 순간, 베트남의 역사와 일상이 한입 크기로 포장된다. 반미는 단순한 샌드위치가 아니라, 한 나라의 근현대사를 압축한 ‘먹는 기억’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바게트는 지배의 상징이었다. 밀가루는 귀했고, 쌀이 주식인 베트남인에게 빵은 낯선 서양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쌀가루를 섞어 더 가볍고 바삭하게 굽고, 비싼 햄 대신 저렴한 돼지고기, 닭고기, 간 레버페이스트를 넣었다. 절인 무와 당근, 신선한 고수, 매운 칠리소스를 곁들이며 입맛에 맞게 변주했다. 그렇게 프랑스의 빵은 베트남의 거리에서 다시 태어났다.
오늘날 하노이와 호치민의 아침은 반미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포장마차마다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하고, 도시의 스쿠터 행렬은 반미를 한 손에 든 채 흐른다. 석탄불 위에 올려진 바게트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따뜻하게 데워진다. 상인은 빠른 손놀림으로 칠리소스를 바르고, 간 레버페이스트를 얇게 펴 바른 뒤 고기와 채소를 차곡차곡 쌓는다. 신문지로 싸서 내주는 동안에도 손님은 다음 재료를 이미 주문하고 있다. 분주하지만 혼돈스럽지 않은 그 리듬, 그것이 베트남의 아침 풍경이다.
반미에는 지역마다 다른 개성이 녹아 있다. 북부 하노이는 소박하고 간결하다. 재료를 최소화하고, 향보다 식감에 집중한다. 반면 남부 호치민은 풍성하고 달콤하다. 설탕이 들어간 마요네즈, 두툼한 돼지고기, 심지어 튀긴 달걀을 넣기도 한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기후와 문화의 결과다. 북부의 건조한 기후와 남부의 열대 습도, 재료의 접근성까지 모두 반영된 ‘지역의 미각 지도’인 셈이다.
이제 반미는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파리의 13구 아시아 거리, 뉴욕의 소호, 서울의 홍대 앞까지 반미 가게가 들어섰다. 베트남 디아스포라들은 이 샌드위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전한다. 프랑스의 바게트와 동남아의 고수가 한입에 어우러지는 이 음식은, 언어보다 빠르게 국경을 넘는다. 각국 셰프들은 반미를 재해석해 새롭게 내놓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같다. ‘한입으로 역사를 먹는 경험.’
그럼에도 현지에서 먹는 반미는 다르다. 하노이의 습한 아침공기, 오토바이 매연이 섞인 거리 냄새, 종이봉투를 스치는 손의 감촉까지 모두 음식의 일부가 된다. 빵을 베어 물면 바삭한 껍질이 부서지고, 달콤한 소스와 짭조름한 고기가 어우러지며 혀끝에 남는다. 이 작은 샌드위치 안에는 식민의 기억, 거리의 생존, 그리고 삶의 유연함이 켜켜이 쌓여 있다.
결국 반미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한 시대의 상처와 적응이 만들어낸 ‘혼종의 음식’이자, 베트남인의 생존 철학을 담은 기록이다. 프랑스의 기술로 빚은 빵에 베트남의 흙과 땀을 채운 결과,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반미를 먹는 일은 그 역사와 향을 함께 삼키는 일이다. 바삭한 한입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결국, 식민의 그림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낸 한 민족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