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기후위기 시대, 관광이 변하고 있다. 관광객을 더 많이 모으는 대신, 환경 부담을 줄이고 지역 자원을 순환시키려는 시도가 전국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진 중인 ‘기후적응형 관광 시범지’가 그 출발점이다. 순천, 인제, 제주 세 지역은 각자의 방식으로 탄소를 줄이며 새로운 관광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관광공사 보고서 ‘데이터 기반 기후변화에 따른 관광 대응 방안’(2025년 10월)은 이들 시범지를 “저탄소 이동·지역 순환·생태 보전이 결합된 지속가능관광의 국내 모델”로 평가했다.
순천, 생태와 이동의 균형을 실험하다
순천만은 국내 대표 저탄소 관광지로 꼽힌다. 관광객은 공영주차장에 차량을 두고, 전기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도심과 습지를 잇는 전 구간이 친환경 교통망으로 구성돼 있다. 순천시는 여행객에게 다회용 컵을 제공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참여 캠페인을 운영한다. 지역 상인회는 ‘탄소 포인트 상점’을 통해 다회용기 사용 시 할인 혜택을 준다. 관광공사는 “순천은 교통·숙박·소비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구조를 갖춘 모범사례”로 소개했다.
인제, 로컬이 만든 ‘느린 여행’
강원 인제군은 고산지대의 특성을 살려 계절별 방문을 분산시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탄소 저감형 로컬투어’는 도보·자전거 중심의 소규모 체험 프로그램으로, 일부 마을에서는 전기자전거 투어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 여행객은 마을 단위로 이동하며 지역 농가와 공방을 방문하고, 숙박과 식음 역시 지역 내에서 순환한다. 보고서는 인제 사례를 “기후 대응과 지역경제 회복을 동시에 이룬 지속가능관광의 대표 모델”로 평가했다.
제주, 섬 전체가 ‘저탄소 실험장’
제주는 ‘그린트립 제주’ 프로젝트를 통해 섬 전역을 저탄소 관광지로 전환하고 있다. 전기차 렌트카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으며, 공항·관광지·숙박시설을 잇는 충전 인프라도 빠르게 확충되고 있다. 제주도는 대중교통 연계 여행상품을 확대하고, 여행 중 발생한 탄소를 상쇄하는 ‘탄소중립 기부 프로그램’을 시범 도입했다. 관광공사는 “제주는 교통·숙박·관광시설이 모두 탄소감축형으로 연결된 국내 첫 광역 모델”로 평가하며, 향후 전국 확산의 거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행의 기준이 달라진다
이들 시범지의 공통점은 ‘불편함의 수용’이다. 차량 이동을 줄이고, 전기나 도보 중심으로 여행의 속도를 늦추면서 체류의 밀도와 지역 연대감은 오히려 깊어졌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이제 여행의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말까지 시범지의 탄소저감률, 지역 소비 순환 효과, 만족도 등을 정량 분석해 향후 ‘한국형 지속가능관광 인증제’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순천의 전기버스, 인제의 로컬투어, 제주의 탄소중립 기부.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다. 여행이 지구의 짐이 아니라, 지구의 숨을 돌려주는 시간이 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