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정연비 기자] 요즘 현대인의 혀는 맵고 짜고 달디단 맛에 끊임없이 노출돼 있다. 강한 맛이 반복되면서 미각은 지쳐가고 몸은 피로를 호소한다. 이제는 혀끝의 쾌락이 아니라 몸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회복을 불러오는 맛이 필요하다. 그 해답은 완주 봉동에서 찾았다. 천년을 견뎌온 봉동 생강이 그 출발점이다.
봉동 생강은 일반 생강보다 진저롤(Gingerol) 함량이 높아 매운 향이 선명하다. 이 알싸한 성분은 체내 대사를 자극하며 무뎌진 미각을 다시 깨운다. 떡볶이나 마라, 단 음료에 길들여진 감각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자연스러운 작용이다. 특히 생강 특유의 열감은 순환을 돕고 몸의 리듬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어 최근 ‘미각 리셋’을 원하는 여행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완주로 향한 이유도 바로 이 미각 회복의 여정 때문이다
미각을 되찾는 길, 완주 생강 로드
천년의 생강 역사는 완주에서 시작됐다. 봉동읍은 한국 생강의 시배지로 기록돼 있으며, 가을이면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생강줄기가 고개를 내민 밭을 따라 걷다 보면 흙의 온기와 농부의 시간이 한 장의 농경화처럼 펼쳐진다. 굵고 단단한 뿌리가 땅속에서 천천히 시간을 품어온 풍경은 그 자체로 완주의 생강이 왜 특별한지를 말해준다.
이 특별함의 근간에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전통 농법이 있다. 봉동 생강 재배 방식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그 가치가 높다. 비닐과 화학비료를 앞세운 속도 중심의 농업과 달리, 봉동은 토양을 쉬게 하고 생강의 성장 속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느림의 방식을 고수한다. 이 느린 농법이 생강의 향과 깊이를 결정짓는다. 완주에서 생강이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라 치유 식재로 여겨지는 배경이다.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뿌리썩음병이 퍼졌던 시기, 봉동 생강 농가들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지역은 빠른 회복을 약속하는 화학비료 대신 전통 방식을 선택했다. 당장의 수확량보다 생강 본연의 힘과 흙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지역 농가들은 봉동 생강전통농업시스템 보존위원회를 꾸려 이 전통을 지켜냈고, 지금도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보존위원회 이민철 위원장은 봉동 생강의 핵심 비결로 ‘덮음 농법’을 설명한다. 볏짚이나 생강풀(참나무 어린잎)을 두껍게 덮어 땅의 온도를 조절하고 유기물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후 변화로 온도 차가 커지는 시대에 생강이 천천히 자라도록 돕는 지혜이자, 화학적 개입을 줄여 생강의 향과 밀도를 높이는 원리다. 봉동 생강 특유의 단단한 풍미는 바로 이 느린 방식에서 비롯된다.

생강 체험의 여정은 완주의 미식 장소들에서 이어진다. 삼례문화예술촌 인근의 카페 ‘커피한잔’에서 진행된 봉동 생강차 시음은 그 매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투명한 호박빛의 생강차는 처음에는 강렬한 향이 몰아치지만, 두 번째 모금부터는 은은한 단맛이 맴돈다. 인공 향이나 가공된 맛이 아닌 흙과 햇살의 기운이 그대로 배어 있는 자연의 단맛이다. 생강절편을 곁들이면 차의 여운과 함께 다시 한 번 부드럽게 퍼지는 생강 향이 완주 생강의 깊이를 완성한다.
완주군이 선보인 생강 브랜드 ‘진저요’는 전통 생강차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상품이다. 강렬한 생강의 매운맛을 부드럽게 다듬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액상 생강차로, 여행 이후에도 완주의 향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
완주의 생강은 강한 향을 내는 농산물에 그치지 않는다. 시간과 계절을 견디며 축적된 한 지역의 지혜이자, 현대인의 미각과 몸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조용한 힘이다. 흙을 덮고, 온도를 살피고, 계절의 흐름에 귀 기울여 키운 생강 한 뿌리에는 느림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극적인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봉동 생강이 전하는 알싸함은 잠깐의 자극이 아니라 오래가는 회복의 맛이다.
완주의 들판에서 만난 이 작은 뿌리는 현대인의 식탁에 다시 균형이라는 감각을 일깨운다. 자극에 길들여진 입맛과 피로한 몸을 천천히 되돌리는 여행, 그 여정의 출발점에 완주 생강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