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인근에 펼쳐졌던 소래 염전.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어내던 이 광활한 들판은 한때 ‘한국 근대 소금산업의 심장’이었다. 전국 일상의 맛을 책임지던 소금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염전 창고의 붉은 지붕은 무너져 내렸고, 소금을 긁어 모으던 나무판은 잡초 사이에서 썩어가고 있다. 사라진 것은 소금만이 아니다. 도시가 성장할수록 과거의 시간과 산업, 생계와 기억이 함께 밀려났다. 지금의 소래 염전은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이자 ‘과거 도시의 골격이 사라진 자리’라는 두 얼굴을 가진 금단의 여행지가 됐다.
소금꽃이 피던 땅
소래 염전은 1930년대 조선 최초의 대규모 천일염전으로 조성됐다. 수로를 통해 해수를 끌어들여 다져 놓은 염전에 펼쳐진 하얀 소금 결정은 당시엔 하나의 ‘풍경 산업’이었다. 1950~70년대엔 연간 수천 톤의 소금이 생산되며 전국으로 유통됐다. 국내 김치 산업, 염장 어업, 식품 가공업 모두 소래 염전 없이 돌아가기 어려웠다. 여름철이면 염부들은 검게 탄 팔로 햇빛을 피해 수건을 두르고 큰 나무 스크래퍼로 소금을 긁어 모았다. 소금더미는 작은 언덕처럼 쌓였고, 염창고는 하루 종일 소금 냄새로 가득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공업용 정제염이 대량 생산되면서 천일염의 역할이 급속히 줄었다. 정부의 소금 수입 개방 정책이 더해지자 염전은 유지할 이유를 잃었다. 결국 1996년, 소래 염전은 역사 속으로 문을 닫았다. 염전이 사라지자 일터와 함께 마을의 삶도 무너졌다. 염부들은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고, 방치된 염전은 도시 계획에서 ‘쓸모 없는 빈 땅’으로 남았다.
소금이 사라진 자리
시간이 흘러 염전은 새로운 의미로 돌아왔다. 염전지를 따라 철새가 모여들었고, 버려진 수문과 염도 측정기, 창고 건물이 도시 개발의 틈에서 오히려 ‘근대산업유산’으로 남았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염전은 생태의 공간으로 변신했지만, 과거 염전 자체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늦었다. 창고는 습기와 바람에 훼손됐고, 염전지의 수로 구조는 일부 붕괴됐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붉은 지붕 창고는 인천시 등록문화재이지만, 실질적 보존 관리가 부족해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염전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물길이 끊긴 수문 옆으로 염도가 떨어져 새까맣게 변한 바닥만 남아 있다. 소래포구에 몰린 상업개발 역시 염전을 더욱 외곽으로 밀어냈다. 신축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의 그림자가 염창고 위로 드리워지고, 과거 염부들이 다니던 소금길은 산책로 일부만 남은 채 단절돼 있다.
'금단의 여행지'가 된 이유
소래 염전은 단순히 폐허가 아니다.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시간과 산업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그 경계가 선명하게 드러난 ‘금단의 지대’다. 여행자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지만, 동시에 과거의 층위가 무너져 내려 더 이상 완전한 형태로 복원될 수 없는 공간. 표면적으로는 생태공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산업의 흔적과 상실의 복원이 교차하며 ‘보여주지 않는 기억’이 숨어 있다.
사라진 산업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소래 염전은 현재 부분적인 복원 논의가 진행 중이다. 염전 체험장 확대, 붉은 창고 리모델링, 염도 수로 시스템 일부 재현 등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당초 염전이 갖고 있던 ‘산업적 스케일’은 이미 재현이 불가능하다. 소래포구의 개발압, 도시 확장의 속도, 문화재 보존 예산 부족이 맞물리면서 ‘완전한 복원’은 현실성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이 공간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래 염전은 한국 근대 산업의 기반이자, 도시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어왔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장소다. 철새가 앉아 있는 염전지 물결 사이로, 붉은 지붕 창고가 조용히 서 있다. 그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사라진 노동과 산업, 그리고 한 시절의 도시가 응축된 기념비다.
도시의 속도와, 기억의 속도
소래 염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곳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졌다. 도시는 빠르게 변하지만, 산업의 흔적과 사람의 삶은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소래 염전이 금단의 여행지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더 이상 다시 볼 수 없는 풍경.’ 도시가 남기는 공백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하는 곳. 그리고 그 공백 속에서, 우리는 한때 도시가 무엇을 품고 있었는지를 조용히 떠올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