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모로코의 오래된 시장, 수크의 한가운데를 걷다 보면 익숙한 바비큐 냄새와는 결이 다른, 깊고 뜨거운 향이 코끝을 파고든다.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닌 ‘양 머리’. 불길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며 구워지는 이 머리는 마그레브 지역에서 오랫동안 축제의 상징이자 환대의 음식이었다. 라마단과 제례, 가족 모임 등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이 요리는, 고기 한 점의 맛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관습을 담고 있다. 여행자는 처음엔 놀라지만, 한입 들어가면 의외의 섬세함과 달콤한 지방의 감칠맛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생김새가 주는 부담을 건너뛰면, 이 요리는 사막의 지혜와 시간을 품은 ‘생존의 조리법’이자 ‘축제의 미식’이다. 양 머리 구이는 모로코가 가진 강렬함을 한 입의 이야기로 풀어주는 음식이다.
모로코에서 양 머리 구이, 즉 ‘부지르(Bouzhir)’ 또는 지역에 따라 ‘메쉬위(Mechoui)’로 부르는 이 요리는 단순한 구이를 넘어 한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북아프리카 유목민들은 도축이 흔치 않았던 시절, 한 마리를 잡으면 버릴 곳 없이 모든 부위를 조리해 먹었다. 머리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부위였지만, 지방과 젤라틴이 풍부해 오히려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명절이나 잔칫날, 집안의 중요한 손님을 맞이할 때 양 머리 요리는 빠지지 않는다.
시장 통에 늘어선 전문 점포들은 보통 저온의 장작불 혹은 탄두르 형태의 흙가마에서 오랜 시간 양 머리를 굽는다. 이때 별다른 양념은 쓰지 않는다. 소금, 큐민(미나리향 씨앗), 고수씨, 때로는 마늘 정도가 전부다. 매운맛도, 자극도 없다. 대신 지방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고기 속으로 스며들고, 뼈에 붙은 살이 부드럽게 떨어질 때까지 불이 모든 일을 해낸다. 모로코 요리는 향신료가 화려한 편이지만, 양 머리만큼은 의도적으로 담백하게 굽는다. 부위 본연의 맛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세로로 쪼개 내면 눈, 볼살, 혀, 뇌 등 다양한 식감이 펼쳐진다. 많은 여행자가 가장 먼저 도전하는 부위는 볼살이다. 윤기가 흐르는 이 살은 결이 곱고 수분이 많아 스테이크보다도 부드럽다. 혀는 약간의 쫄깃함과 고소함이 있어 별미로 꼽히며, 뇌는 크리미한 질감 덕분에 현지에서는 고급스럽게 여겨진다. 눈은 겉보기와 달리 젤라틴이 풍부해 스프처럼 자연스러운 질감을 낸다. 각 부위가 주는 식감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 한 접시로 고기 요리의 다양한 층위를 맛볼 수 있다.
마라케시 제마 엘프나 광장의 노점에서는 양 머리 구이가 여행자를 위한 ‘통과의례’처럼 소개된다. 화려한 조명 아래 줄줄이 매달린 양 머리들은 처음엔 충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점 맛을 보면 외양보다 훨씬 부드럽고 정제돼 있어 의외의 반전이 있다. 여행자들은 흔히 “보이는 것보다 훨씬 순하다”고 말한다. 지방이 풍부한 만큼 느끼할 것 같지만, 큐민과 레몬,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스모키 향이 밸런스를 잡아준다.
모로코에서 이 요리를 즐기는 방식은 간단하다. 손으로 살을 발라 프렌치 브레드 같은 ‘호브즈’에 올리고, 피망이나 양파를 곁들여 먹는다. 때로는 하리사 소스 한 점이 기름기를 잡아주고, 민트 티가 소화를 돕는다. 여행자가 낯선 음식 앞에서 머뭇대면 상인은 꼭 한마디 덧붙인다. “한입이면 돼. 한입 먹으면 마음이 바뀌지.” 그 말은 대부분 사실이기에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은 조언이기도 하다.
양 머리 구이는 화려한 레스토랑의 음식이 아니다. 길 위에서, 시장 안에서, 일상의 소리와 냄새 속에서 먹어야 제맛이 난다. 무겁지 않은 가격, 조리 과정의 투명함, 오래된 기술이 만들어낸 담백한 맛. 그 세 가지가 모로코 양 머리를 단순한 ‘특이한 음식’이 아닌, ‘지역성과 시대성’을 가진 요리로 만든다. 외양은 강하지만 맛은 한없이 따뜻하다. 의외의 친근함이 이 요리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양 머리 구이는 모로코의 강렬한 이미지와 달리, 실제 맛은 놀라울 만큼 순하고 깊다. 사막에서 화려한 조미료나 자원이 부족하던 시대, 불과 시간만으로 맛을 완성하려는 지혜가 이 음식의 핵심이다. 그래서 한입을 먹으면 지역의 기후, 삶의 방식, 공동체의 기억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여행자는 생김새에서 오는 선입견을 넘어서는 순간, 이 음식의 진짜 매력을 발견한다. 양 머리 구이는 특이한 체험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모로코라는 나라를 이해하게 하는 하나의 문장이다. 한입의 용기가 그 문장을 열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