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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여행지–한국편⑫] 침묵의 경계…파주 DMZ

사람이 멈춘 자리에서, 자연은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되찾고 있었다

 [뉴스트래블=편집국] 한국에서 ‘금단의 여행지’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도심의 폐허나 접근이 제한된 산악지대를 먼저 생각하지만, 실은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감정이 흐르는 공간이 존재한다. 파주의 DMZ, 비무장지대 주변 지역이다. 이곳은 지도로는 얇은 선 하나로 표시되지만, 현장에서는 선이 아니라 ‘공기’로 느껴진다. 눈앞의 풍경은 평화롭지만, 그 평온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역사적 긴장의 잔향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임진각을 지나 민간인출입통제선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풍경은 서서히 일상을 떠난다. 다리 위로 지나가던 차의 엔진 소리는 빠르게 사라지고, 그 자리를 철조망에 걸린 바람 소리가 대신한다. 철책은 단순한 장벽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다. 수십 년간 이어진 대립과 정전을 고스란히 붙잡고 있으며, 녹이 슨 철사의 하나하나에서 잊힌 대화와 멈춘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관광지라고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에서 특유의 정적은 깊게 내려앉는다.

 

도라전망대에 서면 이곳이 ‘경계의 끝’이 아니라 ‘경계의 시작’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와 닿는다. 맑은 날이면 북한 마을이 선명하게 보이고, 개성공단의 흐릿해진 건물선이 눈에 걸린다. 가까워서 더 멀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보는 저곳의 풍경은 현실감이 부족한 듯 보이지만, 바로 그 불연속감이 DMZ 여행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이다. 같은 하늘, 같은 산줄기 아래인데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세계가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 여행자를 침묵하게 만든다.

 

이 지역에서는 걷는 행위조차 평범하지 않다. 제3땅굴을 내려갈 때의 묘한 긴장감은 고전적인 관광의 감정에서 벗어나 있다. 단단한 암반 사이를 걸으며 ‘실제로 파 내려왔던 터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행자는 어느 순간 관람객이 아니라 목격자가 된다. 안내 음성은 담담하지만, 그 담담함조차 이곳의 분위기를 한층 무겁게 만든다. 땅굴 안 공기는 차갑고, 빛은 인공적이며, 벽면에 남아 있는 흔적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현실의 결이 된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면 도라산역이 맞이한다. “서울-평양”이라는 표지판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연결되지 않은 철길은 그 자체로 서사이며, 언젠가는 이어질지 모른다는 희망과 아직은 이어질 수 없다는 현실이 기묘하게 겹쳐진다. 이 역은 사용되지 않는 역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의미가 얹힌 역이기도 하다. ‘가지 않는 길’을 보는 경험에서 오는 여행의 감정은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평화누리공원에 들어서면 긴장감과는 또 다른 기이한 감정이 고개를 든다. 넓은 잔디밭, 풍력조형물이 돌아가는 풍경,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하지만 바로 그 너머에는 철책이 서 있고, 그 철책 너머에는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무장지대의 원시적 풍경이 펼쳐져 있다. 역설적으로, 군사적 긴장 덕분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해 자연이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구역이다. ‘위험해서 보호된 자연’이라는 모순된 문장이 현실이 되는 곳, DMZ의 독특한 생태는 다른 어느 여행지에서도 경험하기 어렵다.

 

파주 DMZ는 여행자를 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척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히 존재하며, 오는 이에게 스스로의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건넨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화려한 경치나 즐길 거리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가장 깊고 오래된 쟁점과 감정이 이곳에서 어떻게 축적돼 왔는지 느껴보길 원한다. 가까운 거리지만 마음속에서는 먼 여행이 된다.

 

금단의 여행지는 늘 ‘가지 말아야 했지만 결국 가게 되는 곳’이라는 양가성을 품고 있다. 파주 DMZ 역시 그렇다. 이곳을 떠나는 순간, 관광으로 분류하기 어렵고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가슴에 남는다. 경계에 서 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감정, 그 사이에 놓인 공기의 밀도,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의 결.


파주 DMZ는 한국 여행지 중 드물게, ‘보는 곳’이 아니라 ‘느끼는 곳’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과 사색의 깊이가 바로 이곳을 금단의 여행지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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