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남대서양 한가운데의 바람은 육지의 방향을 잃고 부유한다. 그 흐트러진 바람의 길목에, 면적 49㎢의 하얀 섬 하나가 걸려 있다. 지도 위에서는 점 하나로 표기되지만, 실제로는 파도와 안개가 빚어낸 거대한 얼음의 덩어리 - 그곳이 바로 ‘부베섬’이다.
지구에서 가장 고립된 섬. 이 낱말은 때때로 과장된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부베섬만큼은 예외다. 가장 가까운 육지까지 1600km 이상. 항구도, 주민도, 문명의 흔적도 없이 바다와 바람만이 머무는 공간. 어쩌면 ‘섬’이라기보다, 바다에 떠 있는 한 장의 백색 기록지에 가깝다.
■ 접근 자체가 ‘여정’이 되는 곳
부베섬으로 간다는 것은 ‘도착’을 목표로 하는 여행이 아니다. 그저 접근을 시도해보는 과정 자체가 여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연구선이 출항해도 수일간의 거친 항해가 이어지고, 섬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조차 배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주변 해역은 높은 파도와 차가운 난류가 교차하며 상시 격랑을 만든다. 상륙을 위해 보트라도 내리려 하면, 파도는 그것을 작은 장난감처럼 휙 뒤집어 놓는다.
그래서 부베섬의 풍경은 대부분 멀리서 관찰된 사진들, 혹은 드물게 착륙에 성공한 헬리콥터 팀의 기록으로만 확인된다. 그 기록들은 서로 놀랄 만큼 비슷하다. 뿌연 해무. 검고 울퉁불퉁한 현무암 지대. 그리고 그 위를 거의 완전히 덮어버린 얼음과 눈. 풍경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이 개입할 틈도 없다.
■ ‘생명이 없는 섬’이라는 오해
단단한 얼음층, 숨 쉬는 틈조차 보이지 않는 지형 탓에 이 섬은 종종 ‘생명이 없는 섬’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섬은 펭귄, 도둑갈매기, 바다표범들의 휴식지가 되며, 빙설 틈에서 번식하는 극지 생물들이 의외로 꾸준히 관찰된다. 부베섬이 가진 ‘절대 고립성’은 생명체가 적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감히 환경을 흔들어놓지 못했다는 뜻에 더 가깝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부베섬은 1971년 노르웨이에 의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지금까지도 연구 목적 이외의 상륙은 사실상 허가되지 않는다. 심지어 연구원들조차 머무는 시간보다 접근을 시도하는 시간이 더 길다.
■ ‘고립’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는 공간
사람이 오지 않는 섬은 세상 어딘가에 많다. 그러나 ‘부베섬’은 그중에서도 고립의 결이 다르다. 이 섬은 외부와 단절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다만 존재 자체가 외부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는다. 지도에서 보면 매우 작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방벽은 웬만한 대륙의 절벽보다 단단하다.
또한 부베섬은 인류의 시간 개념을 무너뜨린다. 대부분의 공간은 인간의 발자국으로 시대가 구분되지만, 이곳은 방문자조차 극소수여서 ‘변화’라는 개념이 생기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보는 풍경은 수십 년 전 연구원들이 본 풍경과 거의 동일하며, 앞으로 수십 년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우리는 왜 이런 장소를 바라보는가
관광으로 갈 수 있는 장소도 아니다. 특별한 문화재도, 전설도, 사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베섬은 세계의 모험가, 탐험가, 혹은 단순한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에게 끊임없이 언급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섬은 우리가 지구에서 잊어버린 ‘원시적 침묵’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자각하게 되는데, 부베섬은 바로 그 감각을 폭발적으로 일깨우는 장소다.
■ 지도에서만 존재하는 섬의 진짜 의미
우리는 흔히 “지도에서만 존재하는 곳”이라는 표현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지만, 부베섬은 정말 그 말 그대로다. 여행 블로그에도, 항공사의 홍보에도 등장하지 않는 지점. 그저 지구본의 남대서양을 돌리다 보면 보이는 작은 흰 점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 점은 우리가 지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묻는 질문에 가깝다. ‘인간이 닿지 못한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문명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곳에서도 지구는 여전히 살아 움직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런 침묵을 기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부베섬은 그 질문들을 품은 채, 오늘도 변함없는 고립 속에서 바람만을 손님처럼 맞이하고 있다. 지도 속의 점 하나가 기묘하게 오래 울리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근원적인 감각을 되돌려주기 때문인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