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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여행지–해외편⑤] 외계의 지구…예멘 소코트라 섬

‘지구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행성’이라 불리는 고립의 풍경

[뉴스트래블=편집국] 아라비아해 남쪽 끝, 대륙에서 수천만 년 동안 떨어져 나온 작은 섬 하나가 있다. 예멘 소코트라. 지구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구의 감각을 벗어난 이 섬은, 우산 모양의 드래곤블러드 트리(Dragon’s Blood Tree, 용혈수)가 붉은 수액을 숨기고 서 있고, 바람과 침묵이 묘하게 엇갈리는 외계의 장면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접근조차 어려운 고립의 땅이지만, 바로 그 고립 덕분에 지구가 오래전 잃어버린 풍경이 아직도 이곳에 남아 있다.

 

 

바람이 깎아 만든 외계의 산림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이 만나는 길목, 그 바람의 경계면에 자리한 소코트라 섬은 지리적으로는 예멘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지구 어딘가와 단절된 또 하나의 대륙 같다. 수천만 년 동안 대륙과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남아 있던 이 섬은 ‘시간의 고립’이 만들어낸 생태의 박물관처럼 보인다.

 

섬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피의 드라세나’라 불리는 드래곤블러드 트리다. 우산처럼 벌어진 수관은 뜨거운 해풍을 맞으며 균열 없이 버티고 서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나무껍질 틈으로 붉은 수액이 굳어 흘러내린 흔적이 보인다. 고대인들은 이를 약재로 사용했고, 중세의 항해자들은 이 낯선 붉은색을 ‘피’라 불렀다. 그 상징성은 지금도 섬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장면처럼 남아 있다.

 

섬을 둘러싼 공기는 기묘한 정적을 품고 있다. 파도는 잔잔히 밀려오는데 바람은 거칠고, 모래는 흩날리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 침묵 속에서 독특한 형상의 식물들이 바위 틈을 비집고 몸을 틀어 올린다. 섬 고유종 비율이 30%를 넘는다는 사실은 과학적 데이터이지만, 실제로 이곳에 서 있으면 그 숫자보다 ‘단절’이라는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마치 지구가 오래전 잊고 있었던 풍경의 조각이 이 섬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고립이 남긴 생명과 위험

소코트라는 생태학자들에겐 연구의 보고이지만, 여행자에겐 결코 가벼운 목적지가 아니다. 예멘 본토의 긴 내전과 불안정한 치안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항공편의 개·폐를 반복하게 했고, 섬으로 들어오는 루트는 극도로 제한적이다. 여행 일정이 불확실해지는 것은 물론, 체류 중 외부 지원을 즉각 받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생태적 풍경과는 달리 이곳의 자연환경 역시 만만치 않다. 여름 평균 기온은 40도를 넘어가고, 계절풍은 예측이 어려우며 때로는 거센 모래 폭풍을 만들기도 한다. 섬 일부 지역은 길이 끊겨 차량이 진입할 수 없고, 동쪽 절벽지대는 해저 지형이 급격히 가라앉아 조류 변화가 심하다. 에메랄드색 해변이라도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이곳을 찾는 탐험가들은 대부분 현지 가이드와 이동하며, 식수·연료·위성통신 장비를 필수로 챙긴다. 인프라가 촘촘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라는 점은 종종 잊히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섬을 금단의 여행지로 만든다.

 

외계의 풍경에서 마주하는 고요

소코트라의 인상은 ‘외계적’이라는 단어보다 ‘고요’에 가깝다. 드래곤블러드 트리의 우산형 수관 아래에서 바람이 머리 위로만 스치듯 움직이고, 발밑에서는 모래가 소리 없이 흐른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생태계는 우리가 익숙한 시간의 템포와 다르고, 그 느린 리듬은 풍경 전체에 깊게 배어 있다.

 

섬 북쪽의 대사르 고원(Dixam Plateau)은 그 정적의 절정을 보여준다. 해가 절벽의 단면 위로 길게 드리워질 때, 드래곤블러드 트리는 그림자 하나로 고원에 박힌 고대의 표본처럼 보인다. 이 장면을 바라보면 ‘여행지’라는 감각은 희미해지고, 대신 오래된 자연사 박물관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남는다.

 

시간을 조금 더 보내다 보면 이 침묵이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층을 가진 결로 느껴진다. 수천만 년 동안 인간의 손길에 흔들리지 않은 자연이 품고 있던 시간의 잔향이 차분하게 쌓여 있는 것이다.

 

금단의 섬을 바라보는 이유

소코트라가 금단의 여행지로 불리는 이유는 접근의 어려움이나 정치적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이 섬이 지닌 ‘다른 세계의 기운’이다. 지구에 존재하지만 지구의 논리와 다르게 생겨난 생태, 인간의 발길 하나에도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풍경. 바로 그 점에서 소코트라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소가 된다.

 

섬의 고립은 이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낸 힘이지만, 동시에 그 고립이 무너지면 사라질 것들도 많다. 그래서 소코트라는 단순히 신비로운 장소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고민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이 섬을 직접 찾지 않더라도 떠올릴 수 있는 질문들은 남는다. 지구의 오래된 장면들은 어떻게 보존되어야 하는가. 인간은 어디까지 가까이 다가가도 되는가. 그리고 어떤 풍경은 ‘보지 않는 용기’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소코트라는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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