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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심층] 미래여행 대전환⑨…불안의 지형

전쟁과 위기가 바꾸는 여행의 선택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여행은 자유의 상징이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세계 정세의 영향을 받는다. 전쟁, 테러, 경제 제재, 감염병, 자연재해는 여행의 방향을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관광은 외부 충격에 가장 민감한 산업이며, 동시에 그 충격의 흔적을 가장 오래 남기는 분야이기도 하다. 지금 여행자의 선택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비용이나 편의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 드리워진 불안의 지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관광의 구조를 뒤흔들었다. 팬데믹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동유럽 여행 수요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급격히 줄어들었고, 발트 3국·폴란드·루마니아 등 국경 인접 지역은 안전 이미지에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역은 여행 수요가 오히려 증가했다. ‘안전한 유럽’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재정의된 셈이다.

 

중동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역사·종교·자연 자원이 풍부하지만, 분쟁과 긴장이 이어질 때마다 여행 흐름이 급변한다. 이스라엘·레바논·요르단을 잇는 성지 순례 루트는 지역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중단되거나 우회로가 만들어졌고, 걸프 지역은 국가 간 관계 변화에 따라 관광 캠페인과 입국 정책이 달라지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관광은 정치와 안전을 피해갈 수 없는 산업이다.

 

북아프리카, 카리브해, 동남아시아에서도 태풍·지진·화산 등 자연재해가 여행 목적지 선택에 장기적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지진과 원전 사고의 기억이, 인도네시아는 화산 활동이, 카리브해는 허리케인 시즌이 각각 여행 수요의 ‘숨은 규칙’을 만들어낸다. 특정 시기의 예약 감소, 여행 보험 가입률 상승, 항공권 가격 변동 등은 모두 위험 인식의 반영이다.

 

국가 간 외교 관계도 중요한 변수다. 일본과 한국의 갈등이 양국 여행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례는 익숙하다. 중국과 미국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양국 간 여행자 수는 둔화되고, 대만 해협 긴장은 동북아 전체의 여행 인식을 바꿔놓는다. 관광은 갈등이 발생할 때 먼저 줄고, 관계가 회복되면 가장 먼저 살아난다. 그만큼 감정과 인식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다.

 

여행자의 불안은 세분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안전한 나라, 위험한 나라’로 나뉘었다면, 지금은 지역 단위로 위험이 판단된다. 도시 하나에서 발생한 사건이 국가 전체의 관광 이미지를 흔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멕시코시티의 문화 관광은 계속 성장하지만, 국경 도시의 범죄 뉴스는 여전히 미국 여행자들의 경계를 높인다. 여행자의 리스크 인식은 점점 더 정밀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해 국가와 업계는 안전을 ‘상품화’하는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다. 안전 인증 호텔, 위기대응 가능한 여행사, 정부의 실시간 경보 서비스, 위성 기반 위치 공유 서비스 등이 여행의 기본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일부 국가는 여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보험 의무화나 국가 차원의 위기 대응 센터를 운영하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다. 여행자의 심리적 안정감은 이제 관광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다.

 

한편 불안의 확산은 새로운 여행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위험 지역을 피한 수요가 특정 국가나 도시로 몰리면서 역설적으로 ‘안전 프리미엄’ 시장이 성장한다. 아이슬란드, 스위스, 뉴질랜드처럼 안정성과 자연 환경을 동시에 갖춘 지역은 위기 시마다 여행 수요가 늘어나는 특징을 보인다. 불안이 이동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목적지로 수요를 재배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관광의 미래에서 안전은 단순히 여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여행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세계가 불안정할수록 여행자는 더 신중해지고, 국가는 더 많은 책임을 요구받는다. 전쟁과 갈등, 재난과 기후 위기, 외교 관계의 변화가 모두 여행의 패턴을 바꾸는 시대. 관광의 불안 지형을 읽는 것은 앞으로의 여행 산업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그리고 결국 여행자는 묻게 된다. 지금 떠나는 이 여행은 얼마나 안전한가. 그 질문에 답하는 능력이 관광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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