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후지산 북서쪽 기슭에 숲이 하나 펼쳐져 있다. 지도에는 분명 숲이라 적혀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바다에 잠긴 듯한 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소리가 흡수되고 방향감각이 흐려지는 곳. 일본에서는 이곳을 ‘아오키가하라’, 혹은 ‘주카이’, 침묵의 바다라 부른다.
화산이 만든 숲의 구조
아오키가하라는 자연적으로 매우 특이한 숲이다. 약 1200년 전 후지산의 대규모 분화로 흘러내린 용암 위에 형성된 숲으로, 땅 아래는 다공성의 현무암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지형 때문에 나무의 뿌리는 깊게 내려가지 못하고 지표 가까이 퍼지며, 그 결과 숲 전체가 낮고 빽빽한 구조를 띤다.
이 용암 지반은 전파를 흡수하고 나침반의 오차를 키운다. 휴대전화 신호가 불안정해지고, GPS 위치 정보도 흔들린다. 숲 안에서 방향을 잃기 쉬운 이유는 미신이 아니라 지질학적 특성에 가깝다. 외부 소음은 나무와 지형에 흡수돼 빠르게 사라지고, 바람마저도 숲 안쪽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침묵’이라는 인식의 형성
아오키가하라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자연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이 숲은 오랜 시간 동안 문학, 구전, 대중문화 속에서 ‘고립’과 ‘침묵’을 상징하는 장소로 반복 등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곳은 점차 사회적 의미가 덧씌워진 공간이 됐다.
그러나 현재 일본 당국은 이 숲을 특정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숲 입구에는 생명 존중 메시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고, 순찰과 관리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오키가하라는 공식적으로 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된 자연 보호 지역이며, 무단 출입이나 임의 탐방은 제한된다.
숲은 여전히 살아 있다
침묵의 이미지와 달리, 아오키가하라는 생태적으로는 매우 활발한 공간이다. 희귀한 이끼류와 균류가 용암 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사슴과 소형 포유류, 다양한 조류가 서식한다. 숲 바닥에는 고인 물이 거의 없어 모기가 적고, 대신 습기에 강한 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이 숲이 가진 상징성이 자연 그 자체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숲을 걷다 보면 인간의 이야기는 점차 희미해지고, 대신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와 뒤엉킨 뿌리의 윤곽이 시야를 채운다. 자연은 이곳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접근이 제한되는 이유
아오키가하라는 일반 관광지와 달리 탐방로가 엄격히 지정돼 있다. 지정된 길을 벗어나는 행위는 금지돼 있으며, 이는 안전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조치다. 숲의 내부는 지형상 구조 활동이 매우 어렵고, 길을 벗어나면 다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숲이 금단의 여행지로 분류되는 이유는 공포 때문이 아니다. 위험과 상징,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소비되는 장소’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공간이다.
침묵이 남긴 질문
아오키가하라를 걷다 보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의 무게다. 숲은 말이 없고, 풍경은 과장되지 않는다. 인간이 덧붙인 의미를 제외하면, 이곳은 그저 오래된 화산의 흔적 위에 자란 숲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이 남는다. 장소는 어디까지 중립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사회가 부여한 기억은 자연을 어떻게 바꾸는가. 아오키가하라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침묵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