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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섬’ ‘팬티 마을’ 실화냐… 크로아티아 지도 속 웃픈 지명들

[뉴스트래블=차우선 기자]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이탈리아와 마주한 아드리아해. 투명한 바다 위로 1244개의 섬이 흩뿌려진 나라 크로아티아는 중세 도시 두브로브니크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처음 찾은 여행자들이 가장 당황하는 순간은 풍경이 아니라, 지도 앱을 켰을 때다.

 

‘방귀 섬’, ‘팬티 마을’, ‘브래지어 마을’, 심지어 ‘할머니 엉덩이 섬’까지. 장난처럼 보이는 이 지명들은 실제 크로아티아 지도에 존재한다. 농담 같지만, 모두 실존하는 이름이다.

 

아드리아해 한가운데 147개의 섬으로 이뤄진 코르나티 국립공원. 이 군도에 속한 ‘바비나 구지차(Babina Guzica)’는 크로아티아어로 번역하면 ‘할머니 엉덩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섬의 둥글고 갈라진 형태가 이름이 됐다. ‘벨라 프르데자(Vela Prdeža)’, 일명 ‘큰 방귀 섬’은 바위 틈으로 바람이 통과할 때 실제로 묘한 소리가 난다고 전해진다.

 

두브로브니크 인근의 작은 마을 가치체(Gaćice)는 현대 크로아티아어로 ‘팬티’라는 뜻으로 읽힌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그루드냐크(Grudnjak), 즉 ‘브래지어 마을’도 만난다. 주민 수 2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름만 보면 웃음이 먼저 나오지만, 이 지명들의 뿌리는 전혀 다르다.

 

크로아티아 언어학자들은 “이 지명들은 대부분 섬의 모양, 땅의 성질, 바람과 물길 같은 지형적 특징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그루드냐크’는 고대 슬라브어 ‘그루다(Gruda)’에서 나왔는데, ‘비옥한 흙덩이’를 뜻한다. 농부들이 기름진 땅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붙인 이름이 세월을 거치며 우연히 다른 단어와 비슷한 발음이 됐다. ‘가치체’ 역시 늪지대 제방을 의미하는 고어에서 출발했다.

 

자다르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 지명의 80% 이상이 지형과 형태에서 비롯됐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민망하고 웃기게 들리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기록 방식이었다.

 

 

이 독특한 지명들은 때로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과거 총리 시절 연설에서 한 마을 이름을 비유로 언급했다가 주민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주민들에게 지명은 농담의 대상이 아니라, 삶과 역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의 ‘웃픈 행동’도 이어진다. 가치체 마을에서는 표지판 도난이 잦아 한 해에만 여러 차례 새로 제작해야 했다. 그럼에도 크로아티아는 지명을 바꾸지 않았다. 국립공원 지정 과정과 유럽연합 가입 당시에도 개명 논의가 있었지만, 주민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오히려 이 지명들은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됐다. 지도 캡처 하나로 SNS에서 화제가 되고,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여행의 동기가 된다. 현지 맥주 브랜드 오주이슈코(Ožujsko)는 이런 크로아티아식 유머와 정체성을 광고에 활용하며, 땅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한국에서도 과거 ‘똥골’, ‘개미마을’ 같은 지명이 있었지만, 개발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조금 민망해도, 조금 웃겨도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조상들이 붙인 이름 그대로 시간을 견뎠다.

 

웃기려고 지은 이름은 아니었지만, 500년이 지나 관광 자원이 됐다. 지도 위에 남은 이 ‘웃픈 지명’들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땅을 바라보던 시선이자, 지금도 바꾸지 않는 자부심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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