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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2] 한 나라, 한 장면⑫ 포르투갈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

바다로 나가기 전 마지막 땅
제국이 출발한 돌의 기록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리스본 서쪽 벨렝 지구에 들어서면 테주강 하구가 넓게 열린다. 강은 바다처럼 보이고, 수평선은 곧 대서양으로 이어진다. 배들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물길이다. 그 강변에 거대한 석조 건물이 묵직하게 서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다. 포르투갈이 세계로 팽창하던 시대의 출발선이다. 항해자들은 이곳에서 기도한 뒤 바다로 나갔다. 제국의 역사는 이 문을 통과하며 시작됐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상징이다. 16세기 초 건립된 이 건물은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을 기념해 세워졌다. 발견과 팽창의 기억이 건축으로 고정됐다. 국가는 승리를 돌에 새겼다.

 

위치는 의도적이다. 수도 리스본에서도 가장 바다에 가까운 자리다. 선원과 상인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다. 수도원은 항구와 도시 사이에 놓인 관문이었다.

 

건물 양식 또한 독특하다. 밧줄, 닻, 조개, 이국 식물 문양이 벽면을 채운다. 바다와 항해를 장식으로 끌어들였다. 건축 자체가 해양 국가의 선언문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곳은 종교 공간을 넘어 국가 서사의 무대가 된다. 포르투갈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첫 장면이다. 관광 명소이기 이전에 역사 교과서다. 국가 정체성이 응축된 장소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15세기 말 포르투갈은 유럽 변방의 작은 왕국이었다. 육지로는 강대국과 맞설 수 없었다. 국가는 바다로 눈을 돌렸다. 새로운 길을 통해 생존을 모색했다.

 

엔히크 항해왕자 이후 탐험은 국가 사업이 됐다.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내려가고, 결국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향신료와 금, 노예 무역이 막대한 부를 가져왔다. 리스본은 유럽의 교역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마누엘 1세는 이 번영을 기념할 상징을 원했다.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영속적인 건축물을 택했다. 그렇게 1501년 수도원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비는 대부분 향신료 세금에서 나왔다.

 

수십 년에 걸친 공사 끝에 수도원은 완성됐다. 제국의 부가 돌과 조각으로 응결됐다. 신앙과 권력, 자본이 한 건물에 겹쳐졌다. 포르투갈의 전성기가 그대로 투영됐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며 제국은 쇠퇴했다. 무역 패권은 네덜란드와 영국에 넘어갔다. 식민지 관리 비용은 커졌고 국력은 약해졌다. 수도원의 의미도 점차 과거형이 됐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수도원은 비교적 큰 피해 없이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의 상징만 살아남았다. 역사의 생존자가 됐다.

 

이후 수도원은 종교 시설에서 기념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바스쿠 다 가마와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묘가 이곳에 안치됐다. 영웅의 기억이 집중됐다. 국가는 이 장소를 ‘기억의 전당’으로 재정의했다.

 

결과적으로 제로니무스는 과거를 보존하는 박물관이 됐다. 더 이상 출발점은 아니다. 대신 출발을 회상하는 장소가 됐다. 포르투갈의 흥망이 고스란히 겹쳐진 공간이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의 벨렝 지구는 리스본 관광의 중심이다. 수도원과 벨렝탑, 발견기념비가 한 축을 이룬다. 방문객은 도보로 대항해 시대의 장면을 따라 걷는다. 도시는 역사 동선으로 재편됐다.

 

수도원 내부 회랑은 조용하고 정교하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화려하지만 과장되지 않았다. 돌의 디테일이 시간을 견딘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국가 차원을 넘어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됐다. 포르투갈의 경험이 세계사의 일부로 편입됐다. 장소의 의미가 확장됐다.

 

그래서 제로니무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거를 소비하는 관광지가 아니다. 포르투갈이 어떤 나라였고, 또 어떤 나라가 될지를 묻는 질문의 공간이다. 역사는 계속 해석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보여주는 포르투갈의 얼굴은 ‘바다를 통해 확장한 국가’다. 작은 영토를 한계로 보지 않았다. 대신 바다를 길로 삼았다. 국경을 수평선 밖으로 밀어냈다.

 

이 나라는 가장 먼저 세계를 연결했지만, 가장 먼저 쇠퇴도 경험했다. 영광과 상실이 동시에 존재한다. 수도원은 그 양면성을 모두 품는다. 화려하지만 쓸쓸한 표정이다.

 

돌기둥과 아치에는 여전히 항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밧줄 문양은 배를 떠올리게 한다. 건물 전체가 항구처럼 느껴진다. 떠남의 기억이 구조가 됐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포르투갈이 보인다. 제국의 야망과 작은 나라의 현실이 교차한다. 바다를 향한 선택이 국가 운명을 결정했다. 제로니무스는 그 선택이 남긴 포르투갈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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