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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는 순간, 베를린이 시작된다

유럽 최대 레뷔의 스펙터클과 전위적 실험 무대의 공존
공연 한 편으로 읽는 도시 베를린의 현재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밤은 단순히 어두워지지 않는다. 해가 기울면 도시의 공기는 달라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향한다. 장벽의 흔적과 제국의 건축을 품은 낮의 베를린이 과거라면, 조명이 켜진 무대 위의 베를린은 현재다. 이 도시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공연이 있다.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단연 Friedrichstadt-Palast에서 펼쳐진다. 유럽 최대급 무대를 자랑하는 이 극장은 거대한 스케일 자체가 메시지다. 막이 오르면 수십 명의 무용수들이 대칭을 이루며 등장하고, 무대 바닥과 배경은 LED 영상으로 끊임없이 변주된다. 공중에서 내려오는 퍼포머, 빛의 파도처럼 번지는 조명,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의상까지. 이곳의 레뷔는 줄거리보다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언어를 몰라도 이해되는 공연, 장면 자체가 서사가 되는 형식은 국제 도시 베를린의 얼굴과 맞닿아 있다.

 

조금 더 고전적인 깊이를 원한다면 Theater des Westens로 향하면 된다. 19세기 말 개관한 이 극장은 오랜 시간 베를린 뮤지컬의 중심을 지켜왔다. 붉은 벨벳 객석과 화려한 아치형 무대는 전통의 무게를 느끼게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최신 라이선스 작품과 현대적 연출이 이어진다. 전통과 흥행, 클래식과 대중성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공간. 이는 과거를 보존하면서도 끊임없이 재해석해온 베를린의 역사와 닮아 있다.

 

그러나 베를린 공연 문화의 진짜 힘은 대형 극장에만 있지 않다. Wintergarten Varieté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는 짧고, 공중 곡예와 브레이크댄스, 재즈 선율이 뒤섞인다. 퍼포머의 숨소리와 관객의 박수가 거의 같은 높이에서 울린다. 이곳에서는 장르의 경계가 흐려지고, 이야기보다 리듬과 에너지가 먼저 몸을 흔든다. 분단과 통일, 실험예술과 클럽 문화가 교차해온 도시답게, 베를린은 예술 안에서도 경계를 허문다.

 

 

이 도시에서 공연을 보는 일은 여행 일정의 덧붙임이 아니다. 오전에 브란덴부르크문과 의사당을 지나고, 오후에 박물관섬에서 고전 예술을 마주한 뒤 밤에 극장으로 향하는 동선은 하나의 서사처럼 이어진다. 낮에 본 역사적 시간은 밤의 무대에서 현재형 감각으로 재해석된다. 베를린의 공연은 도시를 요약하는 장면이며, 하루를 해석하는 마지막 문장이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베를린 공연계는 시즌마다 새로운 협업과 대형 프로덕션을 선보이며 끊임없이 변신한다. 인기 작품은 주말 기준 빠르게 매진되고, 공연이 교체되면 무대의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진다. 이 도시는 늘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어제의 베를린과 오늘의 베를린은 같지 않다.

 

극장 문을 나서면 밤공기 속에 여운이 남는다. 네온사인 아래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활기를 띠고, 카페와 바에서는 공연 이야기가 이어진다. 초대형 레뷔의 화려함과 소극장의 실험성이 머릿속에서 겹쳐지며 하나의 도시 이미지가 완성된다.

 

베를린은 장벽을 허물며 재탄생한 도시다. 그리고 그 정신은 무대 위에서도 반복된다. 스케일과 실험, 전통과 혁신이 동시에 살아 숨 쉬는 도시. 막이 오르는 순간, 베를린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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